신새벽 찾아온 손님

김왕식












신새벽 찾아온 손님







청람 김왕식





신새벽, 하늘의 속살을 맨 먼저 적시는 건 바람도 해도 아닌, 창문을 두드리는 작은 물방울이다. 그것은 단순한 빗소리가 아니라, 오래전 떠났던 누군가가 다시 돌아와 문을 두드리는 듯한 반가운 노크음이다.
이른 새벽, 세상이 아직 잠든 시간. 그 고요 속에 내 마음에만 들리는 이 작은 소리는, 어쩌면 기억 저편의 추억이 발끝으로 걸어와 내 영혼을 깨우는 일렁임이다.

발코니에 앉는다.
세상 끝처럼 조용한 이 자리에서 멀리 바다를 내려다보면, 물결 위에 고인 어스름한 은빛이 언뜻 쇼팽의 피아노 음처럼 흘러간다. 그의 녹턴처럼 부드럽고, 때로는 프렐류드처럼 아릿한 감성이 바다 위로 흘러내린다. 음악은 듣는 것이 아니라, 이 순간에는 마시는 것이다. 아침의 고요를 따뜻하게 적시는 커피 한 잔과 함께.

손에 쥔 머그잔에서 퍼지는 커피 향은 단순한 향이 아니라, 내 청춘의 한 장면을 데우는 화로 같다. 그 향은 오래된 일기장처럼 내 안에 감춰진 낱말들을 하나씩 펼친다. 그곳에는 누군가와 함께 나누었던 웃음, 문득 스쳤던 눈빛, 끝내 전하지 못한 안녕 같은 감정들이 묵은 서랍처럼 켜켜이 놓여 있다. 비는 그 서랍을 열게 만드는 낡은 열쇠처럼, 조심스레 감정의 문고리를 돌린다.

쇼팽이 물결치고 커피가 피어오르며, 빗소리는 여전히 반복된다. 그것은 우연의 반복이 아니라, 마치 운명처럼 정확하게 마음의 가장 깊은 곳을 두드린다.
이른 새벽, 내 안에 있던 슬픔과 기쁨이 나란히 앉는다. 두 감정은 다투지 않고, 오늘은 나란히 쇼팽의 선율에 고개를 끄덕인다.

마지막 별빛이 바다 너머로 물러나고, 하늘은 서서히 아침의 입김을 머금는다.
이 짧은 순간, 알고 있다. 세상에서 가장 귀한 건 소란이 아닌 고요 속의 울림이라는 것을. 그 울림은 다름 아닌, 내가 잊고 있던 존재들이 조용히 노크하는 소리, 그리고 그 소리를 알아듣는 내 마음의 문이다.

오늘 아침, 비를 맞은 추억과 커피 향에 기대어, 말없이 다가온 그 반가운 손님을 조용히 맞이한다. 시는 종이 위가 아니라, 이처럼 젖은 공기와 따뜻한 가슴 사이에 피어난다.



ㅡ 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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