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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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내 안의 나를 품는다
청람 김왕식
우리는 살아가며 수많은 관계 속에 자신을 흩뿌린다. 말과 눈빛, 침묵과 손끝, 그 작은 자취마다 누군가는 나를 기억하고, 누군가는 잊는다. 그러나 정작 가장 오래 바라보아야 할 대상은 ‘내 안의 나’다.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느라 스스로를 외면한 채 살아온 시간들, 그 속에서 나는 서서히 나로부터 멀어졌다. 그로 인해 깊은 밤, 정적 속에서 들려오는 한 문장. “내가 내 안의 나를 품는다.” 이 짧은 말이 주는 울림은, 오랜 방황 끝에 도달한 내면의 귀향이다.
‘나’라는 존재는 단순하지 않다. 어릴 적의 순결한 나, 상처받은 나, 성공 앞에 자만하던 나, 외로움 속에 울던 나. 그 다양한 자아들이 내 안에 겹겹이 쌓여 있다. 우리는 종종 그중 몇몇을 부정하며 산다. 실패한 나를 외면하고, 두려운 나를 꾸짖는다. 그러나 진정한 성숙은 그 모든 나를 있는 그대로 껴안는 데서 비롯된다. 내 안의 그림자까지 끌어안으며, 그것이야말로 나라는 전체를 이루는 불가결한 조각임을 인정할 때, 비로소 나 자신이 온전히 된다.
‘품는다’는 말은 단순한 소유가 아니다. 그것은 돌봄이며 수용이며 조용한 화해다. 나 자신에게 따뜻한 품이 되어주는 일, 그 부드러운 감각이 삶의 본질에 닿아 있다. 우리는 바람처럼 변덕스러운 외부 세계에 마음을 맡긴 채 스스로에게는 너무 인색하다. 내게 관대하지 못한 사람은 타인에게도 진심으로 따뜻할 수 없다. 그러므로 내가 나를 품는다는 것은 단지 자존의 선언이 아니라, 세상과의 조화를 위한 가장 첫걸음이다.
고요히 눈을 감고 스스로에게 묻는다. “지금의 나는 과연 내 안의 나를 받아들이고 있는가?” 불완전함조차 생의 일부로 품을 수 있는 용기가 있다면, 그 사람은 어떤 고독에도 무너지지 않는다. 자기를 사랑하는 이는 고독조차 친구로 삼는다. 내 안의 나를 품는다는 것, 그것은 세상 그 누구보다 나를 깊이 이해하는 동반자가 되겠다는 다짐이자, 치유의 시작이다.
하여 나는 이제 서두르지 않으려 한다. 내 안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나와 화해하고, 나를 따뜻하게 안는다. 거기서부터 모든 길은 다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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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내 안의 나를 품는다
거울은 금이 간 달빛이었다
침묵은 오래 묵힌 바람처럼
내 안의 그림자를 더듬었고
나는 나를 몰래 바라보는
잃어버린 나무의 뿌리였다
가면은 잘 다듬은 석고상이었고
그 속의 나는 진흙 속 맨살이었다
비명을 삼키는 꽃봉오리처럼
내 마음은 피지 못한 계절을
속눈썹 사이에 숨겨두었다
시간은 고장 난 시계추처럼 흔들리고
기억은 낙엽으로 쌓여
나는 나를 잃고도
자주 나를 찾아 헤매던
빈 우물의 물소리였다
내 안의 나는
벌레 먹은 사과 속
가장 단 심지처럼
상처 속에서 단맛을 길러
한 줄기 빛이 되었다
이제 나는
어둠까지 데리고 눕는다
내 안의 그림자조차 품으며
스스로를 안아주는
작은 우주가 되었다
ㅡ 청람 김왕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