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나는 성악가가 아니다.

거짓말했습니다.



이상한

일이

가끔 있다.


회합에서

노래를 부를 때가 있다.

부르는 사람들에게는

문제가 없지만


못하는 사람에겐

상당한 부담이다.


문제는

못하는 사람에게 굳이 시킨다는 것이다.


아마도

못 불러야 흥미를 끄는 모양이다


강요에 못 이겨

노래를 부르면


듣지 않고

딴청을 피운다.


시킬 때는 언제고

막상 부르면 듣지 않는다.


못 불러

잘 들어주는 것이 예의 아닌가?




노래의 음악 속에서,

인간의 소통과 이해의 모습이 감춰져 있다.


우리는

때로는

완벽한 노래를 추구하며,

아름다운 목소리와 높은 기술을 칭찬한다.


그런데

그것만이 진정한 노래의 가치일까?

가끔,

무대 위에서 음치가 노래를 부를 때가 있다.

그들의 목소리는 완벽하지 않다.


허나

그들의 노래에는 진실성,

무엇인가 순수하게 전하고자 하는

마음이 숨어있다.


노래를 부르는 것은 자신의 감정을

고스란히 표현하는 행위다.

완벽한 음색보다는

그 순간의 진실된 감정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

그런데

우리 사회에서는

못 부르는 사람을 웃음거리로 삼기도 한다.


그렇게 못 부르는 사람을

굳이 무대로 끌어내어 부르게 하면서,


강요에 의해

어렵게

부르면


그의 노래를 듣지 않고

곁눈질하는 문화.

이것이 정말로 우리의 진정한 마음인가?

모든 사람이

노래를 부를 때,

그들의 마음을 열고,

그 순간의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길 바란다.


듣는 이로서는

그 마음을 귀 기울여 받아들이길 희망한다.


완벽하지 않아도,

그 속에 담긴 진심만으로 충분하다.


모든 노래는

그 자체로 예술이며,

듣는 이의 마음에 닿기만 하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사람의 마음은

노래와 같다.


때로는

완벽하지 않을 수 있지만,

그 속에 담긴 진심은

언제나 아름답다.


그렇기에,

누구든지 노래를 부를 때는

그의 마음을 존중하며

듣는 것이

진정한 예의가 아닐까 생각한다.



몇 해 전 일이다.

정초에

흰 셔츠에

검은색 롱코트를 입고 나들이를 했다.


어느

부인이 뒤따른다.


"선생님

제 아이가 이태리에서

성악을 공부하고 있는데

잠깐 귀국했습니다.


그 사이에 한두 달

선생님께

특별 개인 레슨을 받고 싶은데

가능한가요?"


아니

이게 무슨 소린가?


나는 국문학을 전공했고,

음악에는

그야말로

문외한이다.


머리 스타일이며

복장이

마치

성악교수처럼

보였나 보다.


돌아보고

한마디

답변했다.


"예

저는

개인레슨은 하지 않습니다."


그는

실망했다는 듯이

예의 갖춰

목례하고 힘없이 발걸음을 옮겼다.


혹시

그분이

이 글을 읽는다면

비로소

알아차렸으리라.


사과하고 싶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반려견은 그렇게 또 버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