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채로 말을 건네는 이, 정영렬의 미학

김왕식



정영렬 문화체육관광융합연구원장






빛의 결로 짜인 삶
― 색채로 말을 건네는 이, 정영렬의 미학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색은 말이 없다. 그러나 침묵보다 많은 것을 말한다. 그것은 눈에 보이지만 소리에 가깝고, 만질 수 없지만 마음을 건드린다. 사람의 내면이 흔들릴 때, 가장 먼저 감각하는 것은 언어가 아니라 색이다. 정영렬 문화체육관광융합연구원장은 평생을 그 침묵의 언어, 색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살아온 사람이다. 그의 삶은 한 폭의 색채지도이며, 그 지도의 지명 하나하나에는 인간, 도시, 공동체라는 이름이 조용히 기록되어 있다.

서울 성북동의 골목에서 자라 경희대 화학공학과를 졸업한 그는, 산업적 색의 실체를 다루는 KCC에서 첫 발을 내디뎠다. 색을 분해하고 수치화하며 기계로 읽던 시간은 그를 기술자라기보다 해석가로 길러냈다. 미국에서 수입된 ACS 색채 분석기는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그에게 ‘색을 언어로 바꾸는 사전’이었고, 이내 그는 방송이라는 거대한 스크린에 그 언어를 입히기 시작했다. KBS 색채연구소에서 보낸 15년, 정영렬 원장은 TV 화면이라는 시대의 얼굴에 색의 규율을 부여하고, 그 안에서 시청자의 감각이 쉼 없이 상처받지 않도록 조율하는 ‘빛의 안무가’였다.

그의 작업은 언제나 언어 이전의 언어였다. 사람마다 다른 빨강, 제각각의 파랑을 하나의 공통 감각으로 묶기 위해 그는 색의 이름을 고민했고, 그 이름이 한국인의 정서와 어떻게 만나는지를 연구했다. 언어는 문화의 그림자이며, 그림자 없는 색은 존재하지 않는다. 일본식 색채 어휘를 그대로 가져와 쓰던 당시, 그는 우리 정서에 맞는 색의 서술어를 새롭게 구성하고자 학문적 접근까지 감행했다. ‘색이 문화가 되는 순간’에 그가 있었다.

그러나 그의 색채 철학은 빛나는 과거에 갇히지 않는다. 지금도 그는 색을 미술의 경계를 넘어 음악, 무용, 도시와의 융합으로 확장시키며, 색이야말로 장르를 넘는 예술의 공용어라 말한다. 경희대 미술대학, 음악대학, 무용대학에서 이어지는 그의 강연은 장르와 학문, 감각의 경계를 허물고, ‘색으로 세계를 읽는 법’을 안내하는 하나의 문화적 통역이다. 붓이 아니라 조율된 감각으로 그리는 세상, 그 색의 세계는 이제 학제와 도시, 공동체로 번지고 있다.

그의 시선은 고양시라는 삶의 무대로 이어진다. 그는 도시의 색이 어지러울 때, 그 도시의 시민 역시 정체성과 일관성을 잃는다고 본다. CI 디자인에 색채 기준이 없는 고양시의 현실에 그는 안타까움을 감추지 않으며, 색은 단지 아름다움을 위한 장식이 아니라 공동체의 감정선과 정체성을 연결하는 끈이라는 점을 끊임없이 역설한다. 성남시, 서울시처럼 도시의 색채를 명확히 설정하고 일관되게 운영하는 시스템의 부재는 곧 도시의 이미지뿐 아니라, 시민의 자긍심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정영렬 원장은 고양을 제2의 고향이라 부른다. 그에게 고양은 단지 거주의 공간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고 싶은 사람들의 공간이다. 원주민과 신도시 주민이라는 이질적 단어 대신, 그는 ‘선주민’이라는 말을 제안하며 도시의 새로운 공동체 언어를 만들어간다. 색채를 매개로 사람과 사람이 이어지고, 낯선 이방의 문화가 서서히 고양이라는 하나의 정체성으로 정착되기를 그는 바란다.

최근 그는 색채와 명상을 결합한 심리 치유에도 눈을 돌렸다. 사람에게 색을 선택하게 하고, 그 색이 말하는 무언의 정서를 읽어내는 작업. 그것은 정영렬이 평생 해온 ‘색의 통역’이 개인의 마음이라는 미세한 우주로 향하는 노정이다. 그 노정의 끝에 그는 말한다. “색채는 시대를 비추는 거울이 아니라, 시대를 위로하는 손길이 되어야 한다”라고.

정영렬 원장은 빛으로 말을 건네는 사람이다. 그가 선택한 색은 장식이 아니라 윤리이며, 그의 색채학은 학문이 아니라 삶의 형식이다. 도시의 건물마다 정돈된 색이 흐르고, 사람들 사이에 부드러운 감정의 결이 스며드는 날. 우리는 그곳에서 색이 사람을 품고, 사람이 다시 색을 품는 장면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그날을 위해 그는 오늘도 눈에 보이지 않는 언어, 색채의 숨결을 조용히 번역하고 있다.



ㅡ 청람 김왕식


김왕식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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