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의 힘 ― 인간을 인간답게 지켜주는 마지막 등불

김왕식











인문학의 힘
― 인간을 인간답게 지켜주는 마지막 등불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인문학은 정답을 말하지 않는다. 그러나 방향을 묻는다.
그것은 거대한 기계문명 앞에서 "왜"라고 속삭이는 작은 목소리다.
그 목소리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그 부재는 너무도 분명하다.
오늘날 세상이 이토록 빠르게, 효율적으로, 기계처럼 굴러가는데도 우리는 이상하리만치 지쳐 있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인간이 인간을 잊었기 때문이다.

인문학은 인간을 다루는 학문이다.
그것은 인간의 슬픔과 기쁨, 갈등과 화해, 욕망과 절제를 말한다.
철학은 우리가 누구인지를 묻고, 문학은 우리가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기록하며, 역사는 우리가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성찰하게 한다.
이러한 인문학의 가르침은 마치 오랜 항해 속에서 방향을 잃지 않게 해주는 별빛과도 같다.

우리는 종종 생각한다.
'이 기술이 나를 얼마나 편리하게 만들까?'
그러나 인문학은 묻는다.
'이 기술이 나를 더 행복하게 만들 수 있는가?'
두 질문은 비슷해 보이지만, 그 깊이는 전혀 다르다.
하나는 겉껍질이고, 다른 하나는 뿌리다.
인문학은 뿌리를 지켜주는 학문이다.

문명이란 거대한 건물이라면, 인문학은 그 안에 흐르는 숨결이다.
기계는 세상을 움직이지만, 인문학은 마음을 움직인다.
그 마음이 없다면, 세상은 잘 돌아가도 인간은 무너진다.
인문학은 물리적인 속도를 높이는 것이 아니라, 의미의 깊이를 더하는 일이다.
달리는 차 안에서 창밖을 보며 사색하는 마음,
그 마음 하나를 일으키는 것이 인문학이다.

한 편의 시는 굶주린 이를 먹이진 못해도,
그의 절망에 이름을 붙여줄 수 있다.
철학 한 구절은 아픈 이를 치료하진 못해도,
그 고통의 이유를 성찰하게 만든다.
역사 한 장면은 미래를 예언하진 않지만,
과거의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게 한다.
이처럼 인문학은 직접적이지 않지만, 그 여운은 삶의 근육이 된다.

인문학은 질문하는 법을 가르친다.
질문은 생각을 낳고, 생각은 책임을 낳는다.
책임을 지는 자만이 진정한 자유를 누릴 수 있다.
자유란 아무것도 하지 않는 상태가 아니라,
해야 할 것을 아는 상태다.
인문학은 바로 이 자유를 향한 여정을 이끈다.

오늘날 우리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살고 있다.
하지만 정보는 지혜가 아니다.
검색은 알려주지만, 이해하게 하진 않는다.
인문학은 빠르게 답을 찾는 것이 아니라,
천천히 의미를 묻는 법을 알려준다.
그 속도가 느려 보여도, 그 속에서만 진짜 사람이 자란다.

사람은 말로 살아간다.
말은 생각의 옷이고, 마음의 표정이다.
인문학은 그 말의 품격을 세운다.
단어 하나를 고르는 섬세함,
침묵 속에서 피어나는 존중,
다름을 이해하려는 상상력.
이 모든 것이 인문학의 힘이다.

인문학은 곧 사람을 사랑하는 법을 배우는 학문이다.
다른 이를 이해하고,
자신을 돌아보고,
세상을 더 깊이 바라보게 하는 힘.
그 힘은 눈에 보이지 않아도,
한 사람의 삶을 바꾸고,
한 사회의 품격을 바꾸고,
결국 인류의 내일을 바꾼다.

어쩌면 인문학은 꽃의 향기와 같다.
그 향기는 당장 배를 채우진 못하지만,
삶에 아름다움을 남긴다.
그 아름다움이야말로,
인간이 인간일 수 있는 이유다.
그래서 인문학은 사라져서는 안 되는,
우리가 마지막까지 지켜야 할 인간의 얼굴이다.


ㅡ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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