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와 소크라테스는 이미 메타인지를 이야기했다

김왕식




공자와 소크라테스






공자와 소크라테스는 이미 메타인지를 이야기했다
― 스스로 아는 힘, 그 깊은 지혜의 원형을 찾아서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아는 것을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는 것, 이것이 앎이다.”
이는 논어 「위정편」에 나오는 공자의 말이다. 단순해 보이지만, 인간 인식의 가장 정직하고도 근본적인 토대를 짚는다. 오늘날 교육학과 심리학에서 주목하는 ‘메타인지(meta-cognition)’란 결국, 자신이 무엇을 알고 무엇을 모르는지를 ‘스스로 아는 능력’이다. 그리고 그 깊은 뿌리는 이미 2500여 년 전, 공자와 소크라테스의 언어 속에 놓여 있었다.

공자는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을 명확히 구분하는 것이 진짜 지혜의 시작이라고 했다. 그것은 단지 정보를 습득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인식 상태를 정확히 성찰하는 태도이다.
이는 메타인지의 핵심과 맞닿아 있다. 예컨대, 공자는 “배우고 때때로 익히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라고 말하며 배움의 기쁨을 이야기하지만, 그것은 일방적인 암기가 아니라 스스로의 앎을 돌아보고 점검하는 과정 속에 있다. 즉, 배움과 성찰은 분리되지 않는다.
공자의 학문은 남보다 많이 아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는 내면의 예절이었다.

소크라테스는 이 점에서 더욱 선명하다. 그는 “나는 내가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을 안다”라고 말했다. ‘무지의 자각’이라는 이 유명한 말은 메타인지의 진수다. 그는 아테네 광장에서 사람들과 끊임없이 대화를 나누었고, 그 과정은 지식의 전달이 아니라 자기 인식의 각성을 위한 철학적 여정이었다. 상대가 아는 것처럼 말하지만 실은 모르는 부분을 드러내고, 그로부터 스스로 생각하게 만든다.
소크라테스의 대화법은 바로 생각 위에 다시 생각을 비추는 거울, 즉 메타인지의 가장 오래된 형태였다.

공자와 소크라테스가 공유한 것은 지식의 겸허함이다. ‘나는 안다’는 말보다 더 위험한 것은 ‘나는 다 안다’는 착각이다. 메타인지는 이러한 자기 확신의 맹목성을 경계하는 힘이다. ‘앎의 경계’를 인식하는 사람만이 더 배울 수 있고, 자신을 비우고 새롭게 채울 수 있다. 이는 단지 학문의 방식이 아니라, 인간됨의 방식이다.

메타인지는 곧 내면의 지도를 그리는 일이다.
“나는 어디까지 알고 있는가?
그 지식은 확실한가?
나는 지금 무엇을 모르고 있는가?”
이 질문을 품은 사람은 혼자서도 성장한다.
공자는 제자들에게 늘 묻고 되묻게 했다. 배움은 외우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에게 되묻는 것이다. 소크라테스는 책 한 줄 없이 평생을 질문으로 살았다. 그의 질문은 결코 남을 향한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 반사된 거울이었다.

현대의 교육은 정보를 쌓는 데 몰두하지만, 정보는 지혜가 아니다.
정보는 외부에서 들어오지만, 메타인지는 내부에서 비로소 시작된다.
공자의 학문은 내면의 성찰을 통한 ‘수기修己’였고, 소크라테스의 철학은 질문을 통한 ‘자기 인식’이었다. 이 두 위대한 사상가는 각기 동서의 지평에서 메타인지라는 인간 본성의 불꽃을 일찍이 밝혀두었다.

오늘날 우리는 다시 그 불꽃을 찾아야 한다.
말이 많아질수록 진실은 흐려지고, 정보가 넘칠수록 생각은 얕아진다.
이럴 때일수록 ‘나는 무엇을 아는가’를 묻는 공자의 고요한 음성과,
‘나는 무엇을 모르는가’를 파고드는 소크라테스의 냉철한 질문이 필요하다.

메타인지란 단지 똑똑한 아이를 만드는 기술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이 스스로를 지켜내는 고요한 힘이며,
배움이 삶으로 이어지게 하는 지성의 품격이다.
결국 공자와 소크라테스는 시대를 초월해 우리에게 말하고 있다.
“너 자신을 알라”는 말은, 너의 ‘앎’을 먼저 알아보라는 말이었다.
그것이 가장 오래된 메타인지의 울림이며, 오늘도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지혜다.



ㅡ 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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