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묘지 ㅡ 시인 주광일

김왕식




프레스 센터에서 주광일 시인







공동묘지




시인 주광일






가도 가도 길 끝이
보이지 않을 때

사람들 멀어지고
인간 세상 싫어질 때

천둥 번개
치더라도

나는 가보리
공동묘지에

그곳에서 내가 참고
견디어내야 할 까닭과

소멸하여 가는
모든 것들을

사랑해야 할
이유를 찾으리







소멸의 자리에서 피어나는 사랑의 철학
ㅡ주광일 시인의 삶과 언어가 조우하는 침묵의 미학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주광일 시인은 한평생을 법조인으로 살아온 80대 원로시인이다.
그의 시「공동묘지」는 죽음의 형상을 빌려 삶의 깊은 이유를 묻는 시이다. 이 작품은 단지 어둡고 황량한 이미지의 공간으로서 공동묘지를 상상하는 것이 아니라, 외려 인간 존재가 끝없이 밀려가 만나는 마지막 경계에서 ‘사유의 꽃’을 피워내는 고요한 철학적 응시다.

가도 가도 길 끝이 보이지 않는 그 지점.
인생의 막다른 벽 앞에서 시인은 선택한다. 회피가 아니라 ‘도달’을.
이 시에서 ‘공동묘지’는 단지 죽은 자의 안식처가 아니다.
그것은 삶의 참된 이유를 다시 생각해야 하는 장소,
모든 것이 무너져도 마침내 붙들어야 할 내면의 진실을 찾는 공간이다.

‘사람들 멀어지고 / 인간 세상 싫어질 때’
이 고백은 단순한 염세가 아니다.
오히려 인간이라는 존재가 얼마나 나약하고 외롭고,
관계 속에서 자주 상처받는지를 묵묵히 토로한 것이다.
그럼에도, 시인은 천둥 번개가 치는 가운데서도
“나는 가보리 / 공동묘지에”라고 말한다.
이 구절은 그 자체로 존재의 실존적 결단이며,
죽음이 삶을 되묻는 가장 근본적인 자리가 될 수 있음을 드러낸다.

공동묘지에서 시인이 찾고자 하는 것은,
죽음의 평온함이나 허무가 아니다.
외려 ‘내가 참고 견디어내야 할 까닭’,
그리고 ‘소멸하는 것들을 사랑해야 할 이유’이다.
이처럼 시인은 죽음 앞에서 삶을 역설하고,
소멸의 경계에서 사랑의 진정성을 되묻는다.

그의 시는 형식적으로도 절제된 언어를 선택한다.
불필요한 수사는 없다.
짧고 단정한 행과 연은 마치 묵언수행의 듯한 느낌을 준다.
그것은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기보다,
시를 읽는 독자가 자신의 내면과 마주하도록 하는 장치이다.
이는 시인의 시적 미의식이 단순한 감정 표출이 아니라
존재론적 고요와 윤리적 반성에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주광일 시인의 삶은 언제나 낮은 곳에 머무는 사람이었다.
그는 삶의 고통을 직접 걷고,
세상의 그림자를 피해 떠나기보다
그 안으로 스며들어가는 방식을 택했다.
그런 그의 시에는 피로하지 않은 진심과 억지스럽지 않은 깊이가 서려 있다.
‘공동묘지’라는 메타포 역시,
죽음을 상징하면서도 아이러니하게 가장 인간적인 삶의 의미를
발견하는 공간으로 탈바꿈한다.

요컨대, 「공동묘지」는 존재의 무게에 지친 이들에게
‘왜 살아야 하는가’라는 물음을 던지는 동시에
그 답 또한 조용히 제시한다.
삶이 버거워질수록, 우리는 오히려 죽음의 자리에서
삶을 성찰하고 사랑을 회복할 수 있다는 역설.
그것이 이 시가 지닌 고요하고도 울림 깊은 힘이며,
주광일 시인이 일생을 통해 품어온 삶의 미학적, 윤리적 철학이라 하겠다.



ㅡ 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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