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원벤치 ㅡ 박철언 시인

김왕식




박철언 시인









공원 벤치


시인 박철언




공원 한 모퉁이
누군가 쉬고 싶은 체중 맡기면
지친 몸을 잠시 펌프질 해주는 벤치

긴 세월 달빛과 바람이 앉아도
어머니의 무릎처럼 다 받아주는 의자
사계절 한결같이 누군가를 기다리는

지나가던 걸음이 눌러앉으면
지친 숨결도 삶의 무게도 받아주는 벤치
마음의 끈 풀고 들어선 그 시간
하나둘 떠오르는 애잔한 추억들
잡힐듯한 체온 아련해지는 풍경

잊었던 시간이 고삐를 당기면
추억의 잔해 부스스 털어낸 휴식이
황망하게 일상으로 돌아선다

하루를 지나는 생명과
계절을 건너는 생명들
모두에게 품 내어주는 공원 벤치

.








『공원 벤치』
― 삶의 무게를 품은 사유의 의자, 박철언 시인의 휴식 철학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한 생을 강직하게 살아온 이는 언어 앞에서도 정직하다. 박철언 시인은 경북고교 시절 '청맥'에서 다져온 문학적 감수성을 바탕으로, 한평생을 법조인과 국가의 책무를 감당한 삶의 무게 위에 고요한 시심을 얹는다. 『공원 벤치』는 그 무게와 온기가 절묘하게 어우러진 시편이다.

이 시에서 벤치는 단순한 구조물이 아니다. 그것은 지나온 인생들이 흔적을 눌러놓고 간 한 시대의 무언無言의 증언대이며, 지친 마음이 체중보다 더 무겁게 내려앉는 영혼의 등받이다.
“누군가 쉬고 싶은 체중 맡기면 / 지친 몸을 잠시 펌프질 해주는 벤치”라는 초입은 언뜻 소박하지만, 그 안에는 인간 존재의 쉼과 회복, 회상의 메타포가 녹아 있다.

청민 시인의 벤치는 단순히 앉는 자리가 아니라 세월의 인내를 기억하는 공간이다.
“긴 세월 달빛과 바람이 앉아도 / 어머니의 무릎처럼 다 받아주는 의자”라는 구절은 자연을 인간처럼, 의자를 어머니처럼 환치하는 유려한 비유를 통해 모든 것을 품는 존재에 대한 시인의 미의식과 휴머니즘을 드러낸다.
이는 결국 시인이 삶을 바라보는 태도와 닿아 있다.
곧은 삶을 살되, 단단함보다 따뜻함을,
권위보다 공감과 기다림의 미학을 시로 풀어낸 것이다.

공원 벤치는 사계절을 건너며 스스로를 내어준다.
그 위에 앉는 것은 단지 사람의 몸이 아니라, 기억과 상념, 상처와 바람이다.
“하나둘 떠오르는 애잔한 추억들 / 잡힐듯한 체온 아련해지는 풍경”에서
시인은 단지 풍경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사라져 가는 시간의 감각을 되살려 우리 앞에 펼쳐놓는다.

그는 법과 질서 속에 살았지만, 그 규율 속에서도 인간의 마음이 머물 곳이 어디인지를 알고자 한 시인이었다.
그래서 그의 시에서 “마음의 끈 풀고 들어선 그 시간”은 삶의 격식을 벗고, 존재의 본질로 다가가는 순간이다.
이때 벤치는 단순한 쉼터를 넘어,
삶과 죽음, 기억과 소멸, 존재와 부재가 교차하는 교감의 무대가 된다.

“하루를 지나는 생명과 / 계절을 건너는 생명들” 이 마지막 연은 시의 주제를 우아하게 포개어 정리한다.
하루를 사는 사람도, 계절을 건너는 자연도 이 벤치 앞에서는 평등하다.
시인은 말없이 모두를 품는 존재,
그 속에 자신이 살아온 공적 사명과 인간적 온기를 겹쳐 놓는다.
그리하여 이 시는 결국 공직자의 단단함과 시인의 섬세함이 만나는 자리이기도 하다.

요컨대, 박철언 시인의 『공원 벤치』는 강직함과 부드러움, 질서와 감성이 절묘하게 균형을 이루는
정치적 삶과 문학적 사유의 통섭적 결정체이다.
그의 벤치는 움직이지 않지만,
그 위에 앉는 이들의 사연을 묵묵히 받아주는 시적 증언대로 남는다.
삶에 지친 이들이 앉아 다시 하루를 걸어갈 수 있도록, 그는 시로 벤치를 만들고, 그 벤치로 사람의 마음을 쉬게 하는 법을 배운다.
이것이야말로 박철언이라는 사람의 문학적 윤리이자, 아름다운 생의 고백이다.



ㅡ 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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