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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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결한 언어, 깊은 은유
— 깔끔한 시를 위한 시론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시는 언어의 가장 응축된 형태다. 몇 줄의 문장 안에 세계를 담고, 단 한 행으로도 한 사람의 생을 뒤흔드는 힘이 있다.
문제는 바로 그 ‘응축’에서 비롯된다. 많은 시인들이 ‘무언가를 담아야 한다’는 강박에 휘둘려, 시를 장식하고, 수식하고, 설명하려 한다. 그러나 정작 시가 강해지는 지점은 ‘덜어냄’에 있다. 좋은 시, 깔끔한 시는 많이 담은 시가 아니라, 많이 버린 시다.
우선, 메타포와 수사의 혼동부터 짚어야 한다. 메타포는 사유의 촉수이며, 시의 내면을 구축하는 상징적 구조다.
반면 수사는 외형을 감싸는 장식에 가깝다. 메타포는 독자에게 하나의 세계를 암시하지만, 수식은 감상을 유도하거나 의미를 고정시켜 버린다. “붉은 장미 같은 그녀의 볼”이라는 표현은 감정은 있지만 낡았고, “불안이 웃고 있었다”는 문장은 설명이 없지만 의미가 깊다. 전자가 수사적이라면, 후자는 메타포의 힘이다.
깔끔한 시를 쓰려면 무엇보다 ‘말을 아낄 줄’ 알아야 한다. 시인은 설명하지 않고 보여줘야 한다. 해설은 산문에 맡기고, 시는 고요하게 암시하면 된다. 시를 쓰는 사람은 언어의 사용자이면서 동시에 그것의 청소부다. 시 한 편은 의미를 덧대는 일이 아니라, 의미를 벗기는 일이다.
어떤 시가 ‘고품격’으로 읽히는가. 바로 명료하면서도 여운이 긴 시다. 문장은 단정한데, 독자의 마음에는 오랫동안 메아리가 남는다. 그것은 감각적 묘사나 감정의 농도 때문이 아니라, 시가 열어둔 여백 때문이다.
시는 다 말하지 않을 때 완성된다. ‘이해’보다 ‘감응’이 먼저 오는 시, 그것이 시인의 품격을 만든다.
예로,
“할아버지가 된다는 건
/ 세월 끝에
/ 꽃 하나 피우는 일”
이 한 줄은 한 생의 고백이다. 화려한 수식은 없지만, 시간과 정서와 깨달음이 모두 담겨 있다. 이 시구는 생의 전환을 은유로 직조했기 때문이다. 꽃이라는 단어 하나가 삶의 고통, 기다림, 아름다움, 순환까지 아우른다. 이처럼 은유는 설명을 대체하는 동시에 감정의 농도를 품위 있게 유지시켜 준다.
깔끔한 시는 곧 정확한 시다.
그 정확성은 복잡한 말을 덜어낸 뒤에 비로소 드러난다. 말이 짧을수록 이미지와 감정은 강하게 응축된다. 시가 길어질수록 시인은 독자를 붙잡아두기 위해 설명하고 반복한다. 그러나 명시(名詩)는 말이 적고, 침묵이 많다.
또한 시는, 말을 멈추는 데서 시작된다. 우리는 자주 ‘무엇을 쓸까’보다 ‘무엇을 지워야 할까’를 고민해야 한다. 문장을 다듬는 과정은 단어를 더하는 일이 아니라, 덜어내는 일이다. 마지막 한 줄을 지우는 용기, 그것이 깔끔한 시를 완성한다.
끝으로, 시는 독자를 향한 설교가 아니라 손 내밀지 않는 초대여야 한다. 독자가 시를 해석하게 하기보다, 시 앞에서 ‘멈추게’ 해야 한다. 멈춰 선 독자는 시와 마주하게 되고, 시는 그때야 비로소 열린다.
간결함은 시의 정수이고, 은유는 시의 날개다. 화려하지 않지만, 속이 깊은 문장. 설명하지 않지만, 많은 것을 떠올리게 하는 구절. 그것이야말로 깔끔한 시, 고품격의 시다. 시인은 많은 말을 쓰는 사람이 아니라, 적은 말로 더 많은 울림을 만들어내는 사람이다.
그것이 시를 쓰는 우리가 함께 지켜야 할 시적 품격이자, 문학이라는 이름 앞에서의 최소한의 예의다.
ㅡ 청람 김왕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