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인 트럭운전사가 바라본 오늘의 토론장

김왕식











도로 위에서 본 정치
— 자연인 트럭운전사가 바라본 오늘의 토론장




자연인 트럭운전사 안최호







트럭을 모는 삶은 거칠고 단순해 보이지만, 그 길 위에서는 참 많은 것이 보인다. 도심을 빠져나오며 접하는 광고판, 휴게소 TV 속 뉴스, 차창 너머 논밭과 공장의 풍경, 때로는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대선 후보들의 목소리까지. 그 모든 것이 나에겐 '읽는 신문'이고, '듣는 사설'이다. 나는 오늘도 트럭의 핸들을 잡고 도로를 따라 달리면서, 이 나라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생각한다.

요즘은 대선 국면이다. 방송에서는 연일 후보자들의 토론을 중계한다. 처음엔 관심 있게 지켜봤다. 이 나라의 내일을 책임질 인물들이 어떤 철학을 가졌는지, 어떤 미래를 이야기하는지 알고 싶었다. 그러나 TV 화면 속에서 펼쳐지는 모습은 실망스럽기 그지없었다. 상대를 향한 인신공격, 억양에 실린 조롱, 감정을 앞세운 끊임없는 비방. 마치 정치를 하는 것이 아니라 논쟁으로 상대를 ‘부수는’ 것처럼 보였다.

어떤 이는 말끝마다 자극적인 단어를 끼워 넣는다. 또 어떤 이는 질문을 받으면 곧장 말을 자르며 목소리를 높인다. 왜 이런 모습을 보여주는 것일까. 어쩌면 오래된 정치 문법에 길들어 있어서일지도 모른다. ‘상대를 끌어내려야 내가 올라간다’는 착각, ‘비방이 곧 설득’이라는 오류. 하지만 길 위의 나는 단호히 말할 수 있다. 그 방식은 이미 낡았다.

나는 매일 수많은 차들과 나란히 달린다. 급정거하는 차도 있고, 끼어드는 차도 있다. 그러나 나는 결코 클랙슨을 무분별하게 울리지 않는다. 나의 큰 차체는 작은 승용차를 한순간에 위험에 빠뜨릴 수 있기 때문이다. 조심하고, 양보하고, 서로를 존중해야 도로는 흐른다. 정치는 그보다 더 그렇지 않은가. 상대를 존중하지 않는 토론은, 대중에게 진실을 설득하는 자리가 아니라 자기를 드러내기 위한 ‘기술의 장’이 되어버린다.

내가 본 참된 토론의 승자는, 자신을 과시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오히려 상대의 이야기를 끝까지 경청하는 자였다. 공격보다는 질문을, 비방보다는 논리를 세우는 자였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상대를 존중하는 태도 속에서 자신의 주장을 조용히 펼치는 사람. 나는 그런 사람에게 신뢰가 갔다. 정치인의 말보다 태도에서 그 사람의 진심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지금은 구시대가 아니다. 국민은 더 이상 ‘누가 목소리를 높였는가’, ‘누가 더 화려하게 말했는가’를 보지 않는다. 국민은 누가 가장 책임 있는 자세로 국민을 대변하는가, 누가 타인을 대하는 말에서 품격을 지키는가, 누가 논리와 진심으로 이 사회의 갈등을 어루만지는 가를 보고 있다. 정치는 싸움이 아니라 설득이며, 이기는 것이 아니라 함께 가는 것이다.

정치를 직업으로 여기는 사람은 많지만, 정치를 인격으로 이해하는 사람은 적다. 그러나 이제 국민은 ‘일을 잘할 사람’보다 ‘사람을 존중할 줄 아는 사람’을 원한다. 일은 배우면 된다. 그러나 사람됨은 평생을 걸쳐서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리고 그 인격이야말로, 지도자가 가장 먼저 갖춰야 할 자질이다.

나는 오늘도 트럭을 모는 손으로 조심스럽게 기록을 남긴다. 핸들을 잡은 두 손처럼, 나라의 운전대를 잡을 사람도 중심을 잃지 말아야 한다. 급브레이크보다 부드러운 감속이, 과한 가속보다 일정한 속도가 더 멀리 데려다주는 법이다.

정치도 그렇다. 경청하는 지도자, 품격 있는 태도, 그리고 국민을 대하는 말 한마디에 담긴 따뜻함. 나는 그런 지도자를 원한다. 그리고 그런 사람이라면, 길 위를 달리는 이 작은 트럭 속에서도 반드시 알아볼 수 있다.

국민은 지켜보고 있다. 말이 아니라 사람을. 정책이 아니라 진심을.



자연인 트럭운전사
안최호 드림








길 위에서 바라본 품격
— 트럭운전사 안최호의 시선, 한 시대의 인문적 응시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트럭운전사 안최호의 글은 단순한 사회 비평이 아니다. 그것은 도로 위를 달리는 두 바퀴 위에 실린 한 인간의 ‘존재 인식’이자, 묵묵히 삶을 감내해 온 소시민의 목소리로 발화된 철학적 에세이다. 그는 화려한 수사나 관념어를 쓰지 않는다. 대신 구체적인 삶의 진동, 땀과 기름 냄새 속에서 체득한 언어로 시대를 바라본다. 이 글은 바로 그 치열하고도 고요한 내면에서 우러난 '자연인의 선언'이며, 길 위에서 다듬어진 인격의 산문이다.

정치에 대한 비평은 흔하다. 하지만 안최호의 비평이 특별한 이유는, 그것이 현장으로부터의 시선이기 때문이다. 그는 고정된 스튜디오나 글쓰기 책상에서가 아니라, 실제로 도시와 도시를 연결하는 무게 있는 길 위에서 정치를 목격한다. 그리고 그 정치는 더 이상 공론장의 담론이 아니라, 바로 자신이 살아가는 삶의 방향키와 연결되어 있다.

그의 글은 날카롭다. 대선 토론장을 ‘차마 눈뜨고 볼 수 없다’고 말할 때, 그 언어는 단순한 실망을 넘는다. 그것은 인격 없는 권력 경쟁을 향한, 한 노동자의 명확하고도 조용한 분노다. 그는 목소리를 높이지 않는다. 대신 ‘경청하는 자가 토론의 승자’라는 통찰로 반전을 이룬다. 여기서 우리는 안최호의 미의식을 엿볼 수 있다. 그것은 상대를 존중할 줄 아는 자세야말로 진짜 힘이라는 믿음, 곧 품격의 미학이다. 시끄럽지 않고도 강할 수 있다는 신념, 그것이 그의 글을 특별하게 만든다.

동시에, 그는 따뜻하다. ‘트럭의 클랙슨을 함부로 울리지 않는다’는 대목은 정치적 비유를 넘어, 사람과 삶에 대한 그의 태도를 압축한다. 그는 언제나 자신의 크기를 알고, 타인의 존재를 존중할 줄 안다. 이 땅의 수많은 소시민들이 그렇듯, 그는 권력과는 멀리 있지만, 세상을 유지시키는 가장 중요한 축을 묵묵히 지탱하고 있다.

정치인을 평가하는 방식은 바뀌었다. 더 이상 목소리가 큰 이가 선택받지 않는다. 안최호는 그것을 누구보다 잘 안다. 트럭의 브레이크처럼, 말은 멈출 줄 알아야 하고, 핸들처럼 방향은 조심스럽게 잡아야 한다. 그는 정치를 감각적으로 살아낸다. 말로만 세상을 바꾸려는 이들이 아닌, 자신의 자리에서 성실히 하루를 완성하는 이들이 결국 세상의 중심임을 그는 증명한다.

이 글을 읽으며 우리는 느낀다. 한 사람의 삶이 얼마나 단단한 통찰을 낳을 수 있는지를. 그리고 정치란 얼마나 인간의 인격과 직결되어야 하는지를. 안최호는 이 글을 통해 외친다. “이제는 인격이 실력이다”, “지도자는 똑똑한 사람이 아니라 깊은 사람이어야 한다”라고.

그의 글은 잔잔하지만, 오래 남는다. 이는 단순한 의견이 아닌, 삶에서 길어낸 철학의 언어이자, 노동의 윤리에서 피어난 문학적 시선이다. 우리는 그의 글에서 ‘말하는 인간’이 아닌 ‘생각하는 인간’을 본다. 그것이야말로 오늘의 시대에 가장 필요한 문학적 품격이다.

자연인 안최호는 트럭을 운전하지만, 그의 언어는 늘 세상의 중심을 향해 달린다. 그 길 끝에는 단 하나의 소망이 있다. 인간다운 사회, 존중이 있는 말, 인격이 통하는 나라. 그 길 위에서 그는 오늘도, 조용히 달리고 있다.



ㅡ 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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