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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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을 가르는 바퀴, 안갯속의 나
자연인 트럭운전사 안최호
새벽을 먼저 통과하는 존재가 있다.
도시가 아직 눈을 감고 있을 때, 트럭의 시동이 맥박처럼 깨어난다.
부르르 떨리는 엔진음은 고요를 깨우고,
헤드라이트는 칼날처럼 안개를 가르며 도로 위에 길을 연다.
흑백 필름처럼 번지는 풍경 속에서
동화 속 왕자가 된 듯한 착각이 스친다.
구불구불한 국도를 오르며 짐을 실어 나르는 나의 이 여정은
단순한 운송이 아니라, 이 나라의 작은 맥을 잇는 행위다.
그러나 라디오 속 소식은 그 몽환을 깨운다.
오늘도 국회는 혼란, 정쟁은 민생을 유린한다.
브레이크 없이 질주하는 말들,
방향 잃은 정치의 핸들,
서로에게 책임을 미루는 이들의 소음만 가득하다.
문득, 스스로에게 묻는다.
“지금, 이 나라의 핸들은 누가 잡고 있는가?”
나의 두 손은 여전히 핸들을 움켜쥐고 있다.
앞이 보이지 않아도, 신호가 꺼져 있어도
곧고 바르게 나아가기 위해 힘을 준다.
이 트럭은 단순한 짐차가 아니다.
짐칸에는 생필품보다 더 무거운,
사람들의 내일과 고단한 삶이 실려 있다.
멈추면 누군가는 식탁을 잃고,
달리면 또 누군가의 하루가 이어진다.
연설은 하지 않는다.
대신 새벽마다 땀으로 진실을 도로 위에 써 내려간다.
이 트럭은 이 나라의 척추다.
그 위에서 정치가 흔들려도, 이 궤도는 흔들리지 않는다.
민심은 가장 낮은 곳으로 흐르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연단에서 말하고,
한 사람은 갓길에서 묵묵히 달린다.
나는 이름 없는 존재일지라도
가장 정확한 길을, 가장 조용히 달리고 있다.
안개를 가르며 다시 되묻는다.
“무엇을 위해 달리는가?”
대답은 길 위에 있다.
도착지는 없어도, 내게 가야 할 길은 분명하다.
정치가 멈춰도
바퀴는 굴러야 한다.
그것이 내가 살아 있는 방식이니까.
― 자연인 트럭운전사 안최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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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를 가르며 진실을 운반하다
― 트럭운전사 안최호의 삶과 문학, 그 미학의 총평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자연인 안최호의 이 글은 단순한 직업의 고백이나 하루 일상의 풍경을 넘어선다. 그것은 시대를 살아가는 한 인간이 새벽이라는 존재의 경계 위에서 던지는 자기 성찰이며, 짙은 안개를 뚫고 나아가는 진실의 메타포다. 그의 트럭은 단순한 운송 수단이 아니라, 민심과 현실, 그리고 침묵의 도로 위에 새기는 생존의 언어다.
안최호의 문장은 화려하지 않지만 단단하다. 정제된 표현 속에 노동의 리듬이 살아 있고, 짙은 묵음의 결이 문장마다 스며 있다. 그는 스스로를 동화 속의 왕자라 말하며 몽환과 현실을 넘나들지만, 그것은 허황된 이상이 아니라 인간다운 삶에 대한 존엄의 은유다.
정치의 풍랑을 조용히 통과하는 그의 시선은 날카롭다. "지금 이 나라의 핸들은 누가 잡고 있는가"라는 내면의 자문은, 한 노동자가 가질 수 있는 가장 정직하고 본질적인 물음이며, 동시에 무기력한 정치권에 대한 통렬한 풍자이기도 하다. 그의 핸들은 멈추지 않고 달리지만, 나라의 방향은 엉뚱한 곳으로 기운다. 이 대비는 현실의 부조리를 비판하면서도 삶을 포기하지 않는 묵직한 희망을 내포한다.
안최호는 삶의 중심을 낮은 곳에 둔다. 그는 ‘새벽을 가르는 사람’이며, ‘빛보다 먼저 움직이는 손’이다. 그가 추구하는 가치는 소리 없는 책임, 이름 없는 헌신, 그리고 정직한 방향성이다. 그것은 문학을 삶의 미학으로 실천하는 작가의 자세이며, 동시에 그가 품고 있는 철학이다.
그의 미의식은 현란한 수사보다 꾸밈없는 사실에 있다. 삶을 꾸미지 않고, 정치를 흉내 내지 않으며, 노동을 미화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의 글은 현실 그 자체를 가장 겸허하고도 묵직한 언어로 담아낸다. 바로 그 점에서 안최호의 글은 고귀하다.
그는 새벽안개의 바깥을 달리면서도, 그 안을 가장 선명하게 바라보는 사람이다. 그에게 트럭은 고단한 생계가 아니라, 시대를 운반하는 언어의 수레이며, 그의 삶은 도로 위에서 피어나는 가장 순수한 문학이다. 이 글은 단지 한 운전사의 기록이 아니다. 그것은 ‘국민’이라는 이름으로 살아가는 한 사람의 정신이자, 시대의 불확실 속에서 유일하게 흔들리지 않는 윤리적 궤도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안최호는 더 이상 운전자가 아니라, 우리 사회가 신뢰할 수 있는 ‘정신의 항로’를 운전하는 삶의 철학자가 된다.
ㅡ 청람 김왕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