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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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이리마을
모티프원
이안수 작가님
모티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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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선의 집, 모티프원에서의 하루
― 파주 헤이리 마을, 삶과 예술이 머무는 그곳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파주 헤이리 예술마을 언덕 너머,
잠든 듯 서 있는 고요한 나무들 사이로
마치 오래된 시 한 줄처럼 숨어 있는 집이 있다.
그 이름, 모티프원(Motif One).
단순히 게스트하우스라 부르기엔 어딘가 부족하다.
이곳은 쉼터이자 서재, 은둔처이자 예술의 안식처,
그리고 어떤 이들에겐 잠시라도 ‘현생’을 벗어날 수 있는
귀한 한 구절이다.
모티프원의 주인장은 첫눈에 인상적이다.
풍성한 수염은 마치 도연명의 뺨 같고,
말을 아끼는 눈빛에는
세월의 먼지와 여백이 고요히 머문다.
시인이고 수필가이며,
번역가이자 기자였고,
카메라를 들면 작가가 되고,
여행 가방을 들면 구도자가 된다.
그는 그렇게 살아왔다.
하나의 직업이 아닌, 삶의 문장으로.
이곳을 찾는 사람들 중에는
멀리 이국에서 날아오는 이도 있다.
하루 이틀 머물기 위함이 아니다.
이 집 서가에 기대어 차 한 잔 마시며
그와 조용히 담소를 나누는 것이
그들에겐 여행의 본질이자 목적이다.
책장에 빽빽이 꽂힌 고서와 영문 시집,
그리고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낡은 재즈 한 곡.
그 속에서 나른하게 떠오르는 삶의 속도가
이곳 모티프원에서는 고요한 음악처럼 흐른다.
한 손님은 이렇게 남겼다.
"현생에 지쳐서 진정한 쉼을 위해 무작정 떠난 곳 모티프원입니다. 진짜 너무너무 좋았어요. 조용히 책 읽으면서 마음의 어둠이 물러갔습니다. 아침에 커피 내려서 흘러나오는 라디오를 들으며 조용히 책 읽으니 너무 좋았고요."
그 말이 전부다.
모티프원은 고요를 파는 곳이 아니라,
고요를 나누는 집이다.
책 속으로 숨을 고르고,
나뭇잎 너머 계절을 찬찬히 맞이하는 시간.
방음이 살짝 아쉬웠다고 한다.
그러나 그런 작은 틈이
오히려 세상과 맞닿은 문틈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사람의 소리, 작은 기척, 그리고 그 소란마저도
이곳에서는 하나의 풍경처럼 여겨진다.
미러룸 너머로 펼쳐지는
초록의 나뭇잎이 잎새를 흔들며 말을 건다.
다음 계절이 오면 다시 오리라 다짐하게 된다.
다른 방, 다른 시간,
그러나 같은 온기의 집으로.
모티프원은 기억보다 오래 남는다.
그곳에 다녀온 이들은 말보다 침묵으로 회상한다.
왜냐하면, 그곳은
살아 있는 사람의 체온과,
책의 냄새,
마주 앉은 이의 숨결이
천천히 삶을 되돌려주는 곳이기 때문이다.
파주 언덕 위 그 집은,
오늘도 말없이 문을 열고 있다.
세상에 지친 한 사람을 위해.
그리고 나, 또다시 그 집이 그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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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티프원, 신선이 내린 집
― 파주 헤이리의 어느 하루
청람 김왕식
파주 언덕 끝,
바람보다 느린 책갈피 하나
잎새 사이로 숨은
작은 숨결의 집이 있다
그곳 이름, 모티프원
말보다 조용한 것이 머무는 집
세상에 닳은 발자국들이
잠시 잠든다는 전설이 있다
주인장은 수염으로 안개를 빚는 사람
시의 뿌리를 끌어올려
찻잔에 띄우는 신선이다
그의 눈빛엔 번역되지 않은 고요가 있다
서재는 숲보다 깊고
서가마다 오래된 바다가 찰랑인다
책 사이에 눌려 있는 이국의 바람들이
커튼 사이로 다시 불어온다
한 이방인이 남긴 말
“현생의 어둠이
커피 한 잔에 가라앉았다”
모티프원은
벽 대신 페이지로 채운 방
시간대신 침묵을 걸어두고
어디로든 가지 않아도
머물 수 있는 여행이다
아쉬운 건,
벽 너머로 흘러든 한 줌의 사람소리
그러나 그 틈조차
세상과 이어진 창처럼 따뜻했다
미러룸 창밖, 초록잎들이
한 편의 풍경화를 흔든다
그림 속으로 들어가고 싶은 마음,
또 다른 방에서 다시 피어날 기억
모티프원은
지도에 없는 나라
시가 눕고, 바람이 앉고,
사람이 다시 살아나는 곳
신선은 오늘도 거기 있다
한 손에 찻잔, 한 손에 시 한 줄
말없이 문을 열어두고
지친 당신을 기다리고 있다
ㅡ 청람 김왕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