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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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 찾은
어느 중년의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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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살았더니 행복하더라
청람 김왕식
아침밥을 꼭 챙겨 먹었다.
된장찌개엔 두부를 넉넉히 넣고, 김치는 어제보다 살짝 데워 먹었다. 달걀프라이는 반숙으로. 누군가는 그걸 ‘하찮은 일상’이라 부르겠지만, 나는 안다. 그 사소한 습관이 하루를 다정하게 바꿔놓는다는 걸.
누군가가 그랬다.
“매일 똑같은 삶이 지겹지 않냐”라고.
그래서 되물었다.
“햇살이 매일 비친다고 해서 지겹던가요?”
이렇게 살았다.
문득 생각나면 안부 전화를 걸었다. 잘 지내냐는 인사 한 마디에 울먹이는 친구도 있었다. 그럴 땐 말없이 들어주는 것이 약이다. 침묵이란, 위로의 가장 온순한 언어라는 걸 그 나이에 처음 알았다.
이렇게 살았다.
할 수 있을 만큼만 일하고, 남은 시간엔 좋아하는 일을 했다. 걷기, 읽기, 쓰기. 바람 부는 대로 천천히. 남들이 달릴 때 뛰지 않아도 된다는 걸 깨닫는 데 오십 년쯤 걸렸다. 그제야 숨이 덜 찼다.
이렇게 살았다.
자식에게 “공부해라” 대신 “잘 먹고 다녀라”를 말했다. 안아주고, 들어주고, 기다렸다. 부모란 가르치는 자리가 아니라, 묵묵히 기다리는 자리라는 걸 알게 됐다. 그리고 아이도, 나도 편해졌다.
이렇게 살았다.
좋은 말 한 줄에 오래 머물렀다.
“감사합니다”
“괜찮아요”
“고마웠어요”
그 말들은 작은 등불 같아서, 사람 사이에 어둠이 들어설 틈을 주지 않았다.
이렇게 살았다.
많이 가지려 하지 않았다.
옛날엔 나도 컸다.
남 앞에 서려했고, 박수도 받고 싶었다.
그러나 박수가 끝나고 혼자 남겨졌을 때 알았다. 행복은 손뼉이 아니라, 따뜻한 손 하나였다는 것을.
이렇게 살았더니,
한 번도 유명해지지 않았지만,
자주 웃었다.
소문난 맛집보다 집 밥이 좋았고, 해외여행보다 마당의 봉숭아가 예뻤다. 누구보다 많이 가진 건 아니었지만, 누구보다 편히 잘 잤다.
이렇게 살았더니 행복하더라.
어렵지 않다.
남 보며 살지 않고, 내 속도대로 걸어갔을 뿐이다.
가끔 넘어졌고, 자주 멈췄다.
그러나 늘 마음만은 따뜻하게 지켰다.
그랬더니,
오늘도 참 잘 살았다고,
내 안의 나에게 미소 지을 수 있었다.
ㅡ 청람 김왕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