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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이 꽃이 졌으니, 내일은 저 꽃이 피리라

김왕식







오늘은 이 꽃이 졌으니, 내일은 저 꽃이 피리라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꽃은 아무 말 없이 진다. 그러나 그 침묵엔 문장이 있다. 지는 꽃은 다만 “다음은 너”라고, 곁에 선 꽃망울에게 인생의 순서를 건네줄 뿐이다. 그래서 이 지극한 진실 앞에서 인간은 배운다. 아름다움은 끝이 아니라, 건너가는 다리라는 것을.

오늘은 이 꽃이 졌으니, 내일은 저 꽃이 피리라.
이 문장은 언뜻 계절의 이치처럼 보이지만, 실은 마음의 철학이다. 시간 속에서 무너진 모든 것들

—꿈, 관계, 믿음—그것들 또한 이 꽃이 지는 자리이며, 곧 저 꽃이 피어날 터다.

한 송이의 꽃이 지는 순간, 다른 삶은 시작된다. 꽃잎이 바람에 휘돌리며 흙으로 돌아가는 그 찰나, 우리는 상실보다 생의 교대의식을 보아야 한다. 누군가의 끝이 누군가의 처음이고, 어제의 눈물이 내일의 빛을 감싸 안는다. 인생은 그런 교차점에서 가장 고요한 환희를 품는다.

문학은 그런 진실을 감각하는 언어다. 시인은 시든 꽃을 애도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자리에 고요히 엎드려 본다. 그리고 그 바닥에서 들려오는 생의 소리를 적는다. “나는 졌으니, 너는 피어라.” 그 속삭임은 눈물로 젖은 대지에서 가장 먼저 피어나는 감동이다.

지혜로운 삶이란 지는 순간을 외면하지 않는 삶이다. 무너지는 시간은 피어날 시간을 예비한다. 그러므로 꽃이 지는 그 자리는 끝이 아닌 시작이며, 누군가의 절망이 아닌 또 다른 존재의 들머리다.

세상은 거대한 정원이다. 아침엔 진달래가 지고, 저녁엔 목련이 피어난다. 찰나와 찰나가 겹쳐 영원이 되고, 낙화와 개화가 맞물려 생의 리듬이 된다.

꽃이 지는 순간은 곧 한 존재의 사랑이 다했다는 고백이다. 그 고백은 아름답다. 바람에 스러지며 “나는 최선을 다해 피었다”라고 말할 수 있는 존재는 지고도 찬란하다. 인간 또한 마땅히 그렇게 져야 한다. 사랑이 다한 자리에서 미련이 아니라 다음 사람을 위한 빈자리를 남겨야 한다.

가장 고귀한 삶은, 지면서도 누군가의 피어남을 위해 한 줌의 빛을 남기는 삶이다. 봄이 지나가도 봄은 다시 오고, 사람은 떠나도 사랑은 다시 머문다. 시간은 상실을 데려와 희망을 심는다.

그러니 지금, 당신 마음의 꽃이 졌더라도 슬퍼 마라. 어쩌면 그것은 내일 누군가의 꽃을 피우기 위한, 가장 조용한 축복일지도 모른다.

당신이 져준 그 자리에서,
세상은 또 한 송이의 꽃으로 당신을 기억할 것이다.




— 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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