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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 물 푸른 발 ㅡ 시인 백영호

김왕식







맑은 물 푸른 발




시인 백영호




유월 초여름의 하늘기운이
계곡물을 핥고 지나갈 즈음
청산이 좋아라 청산에 오른다

길 따라 계곡물 따라 오르는 청산길

길섶의 참나리 자매 힘내시라 응원박수하고

백 년 노송 어깰 치며 지나온 계곡바람이

버들치 소꿉놀이하는 계곡물 위를 핥고 지나간다

땀으로 속옷이 젖고 거친 숨 몰아 쉴 즈음
선녀탕에서 물장구치던 쉬리 떼
잠시 쉬어가라
청산시인 발목을 잡는다

옥구슬 쏟아지는 계곡 발을 담그고 세수하니

마음속 찌꺼기들 알알이 허물허물 나오더니

말끔하게 씻겨 나간다

유난히 하이얀 뭉게구름 한 술 푹 떠서

계곡물에 말아 후루룩 마시니
나,
신선의 낙樂 탐한다.








청산에 발 담근 시심, 자연과 함께 숨 쉬는 사람
― 백영호 시인의 ‘맑은 물 푸른 발’을 평하다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백영호 시인의 「맑은 물 푸른 발」은 자연이 곧 시이고, 삶이 곧 시심임을 여실히 보여주는 작품이다. 유월의 청산으로 향하는 발걸음은 단지 등산이 아닌, 삶의 무게를 벗고 본래의 자기를 회복하는 시인의 정결한 순례이자, 인간과 자연의 경계를 허물고 하나가 되려는 조용한 통합의 몸짓이다.

시인은 “계곡물을 핥고 지나가는 하늘기운”이라는 섬세한 자연의 언어로 첫 장을 연다. 이는 조경학자로서 오랜 세월 자연을 관찰하고 손질하며 길들인 이의 눈에서만 나올 수 있는 관조의 미학이다. 자연을 관찰의 대상이 아니라, ‘함께 숨 쉬는 생명’으로 대하는 그의 철학이 응축되어 있다.

길섶의 참나리 자매는 응원의 박수를 보내고, 백 년 노송은 어깨를 두드린다. 시인의 청산길은 고독한 노정이 아니라, 생명들의 손짓이 어우러진 공동의 축제다. 이 부분은 자연을 단지 배경으로 삼는 일반적 묘사와는 질적으로 다르다. 모든 자연물에 의인화를 부여함으로써, 시인은 자신이 청산의 일부임을 고백하고 있다.

계곡에서 뛰노는 ‘쉬리 떼’는 그저 물고기가 아니라, 시인의 내면 깊숙이 잠들어 있던 동심과 무구한 존재의 기억이다. 그들이 발목을 잡을 때, 시인은 삶을 잠시 멈추고 쉬어가야 할 이유를 깨닫는다. 이는 단지 물리적 쉼이 아닌, 존재론적 멈춤이며 자아 회복의 찬찬한 호흡이다.

옥구슬 쏟아지는 계곡물에 발을 담그는 행위는 시인의 육체와 정신이 자연 속으로 스며드는 정화의례다. “마음속 찌꺼기들 알알이 허물허물 나오더니 말끔하게 씻겨 나간다”는 대목은 단지 감상의 차원이 아닌, 자기 존재의 정화를 선언하는 성찰의 구절이다.

후반부, “하얀 뭉게구름 한 술 푹 떠서 계곡물에 말아 후루룩 마시니”라는 시구는 비현실적이되 생생하다. 이는 시인이 자연을 대하는 방식을 극명히 드러낸다. 자연은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마시는 것이며, 그 속에서 신선의 낙을 맛보는 순간, 시인은 이미 인간 이상의 경지에 이른다.

백영호 시인의 삶은 이 시에 고스란히 녹아 있다. 한평생 조경학자로 살아오며 나무와 흙, 물과 바람과의 대화를 나눈 사람. 그는 자연을 가꾸는 데 그치지 않고, 자연의 숨결을 시어로 옮겨오며 그 품속에 안겼다.

그의 시는 절제되어 있으나 생명으로 충만하고, 정갈하되 유희성이 살아 있다. 현실의 피로 속에서도 청정한 감각을 잃지 않고, 자연을 통해 인간의 내면을 탐구하는 시인의 미의식은 독보적이다.

「맑은 물 푸른 발」은 단지 청산을 노래한 시가 아니다. 그것은 한 생애가 자연 앞에서 얼마나 정직하게 무릎 꿇고, 얼마나 사랑으로 다가섰는지를 보여주는 고요한 증언이다. 백영호 시인은 자연과의 동화 속에서 스스로를 정제해 가며, 우리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다. “인간은 결국 자연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 존재이며, 그 과정이 곧 시의 본질이다.”



ㅡ 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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