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그냥, 행복해서 가슴으로 눈물이 흐를 때가 있어요

김왕식










그냥, 행복해서 가슴으로 눈물이 흐를 때가 있어요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때로는 아무런 징조도 없이 마음이 먼저 젖는 날이 있다. 바람 한 줄기 스쳤을 뿐인데, 가슴 깊은 곳에서 오래 고여 있던 무언가가 출렁인다. 그 물결은 눈으로 흘러나오지 않는다. 대신, 말없이 가슴속에서 서서히 번진다. 이유를 설명할 수는 없지만, 그 감정이 분명하다는 것만은 알겠다. 그냥, 행복해서—라는 말로도 다 담을 수 없는 어떤 벅참이 있다.

그 감정은 소란스럽지 않다. 차라리 겨울 끝자락, 아직 녹지 않은 호숫가의 얼음 틈새에서 스미는 물소리 같다. 단단하게 얼어붙었던 감정이 서서히 풀리며, 안쪽 어딘가에서 따뜻한 샘이 피어나듯 울컥해진다. 그 물길은 눈으로는 새지 않는다. 대신 가슴속에서 천천히 울고 있는 것이다.

사람들은 흔히 눈물이라 하면 얼굴을 타고 흐르는 물줄기를 생각하지만, 진짜 울음은 말보다도, 눈물보다도 더 안쪽에서 운다. 언어가 미처 다다르지 못한 자리. 바로 그곳에서 문학은 말을 걸고, 마음은 비로소 반응한다.

문학은 울리지 않는다. 다만 조용히 건드린다. 오래 감춰져 있던 기억의 부스러기 하나를, 무심히 펼친 페이지 한 구절이 건드릴 때가 있다. 정현종의 “사람이 온다는 건 어마어마한 일”이라는 시구, 혹은 윤동주의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는 그 문장에서 우리는 무언가 아득한 울림을 느낀다. 그것은 울지 않으려 애써왔던 마음이 결국 포기하고 말없이 가슴속으로 흐르는 울음이다.

나는 그 울음을 ‘문학의 샘’이라 부르고 싶다. 억지로 퍼올릴 수 없는 깊고 조용한 수맥. 그것은 외부의 격동이 아니라, 내면의 계절이 바뀌며 비로소 터지는 온기의 물줄기다. 슬퍼서가 아니라, 살아 있음에 기뻐서. 힘들어서가 아니라, 견딘 나 자신이 다정해서.

행복은 꼭 웃으며 다가오지 않는다. 오히려 아무도 보지 않는 골목길 어귀에서, 낡은 벤치 위에 가만히 앉아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그런 순간, 우리는 안다. 지금 내 마음이, 눈이 아니라 가슴으로 울고 있다는 것을. 그것은 목소리 없는 노래이며, 파문 없는 떨림이다.

문학은 바로 그런 울음의 언어다. 말해지지 않은 것을 말하고, 보이지 않는 감정을 조용히 떠올린다. 우리 내면에 묻혀 있던, 누구에게도 꺼내 보이지 못한 결의 단어들—그것을 문학은 문장 하나로 환하게 비춘다. 그러면 그 문장을 따라, 우리는 조용히 젖는다. 그리고 그 젖음은 어느새, 가슴 한복판에서 눈물처럼 스며든다.

누군가는 말한다. “행복해서 우는 게 과연 가능한가요?” 나는 말하고 싶다. “가장 순결한 눈물은, 슬픔보다도 행복에서 먼저 피어난다”라고. 우리가 살아 있음을 가장 깊이 체감하는 순간은, 아무 말도 없이 내 안에서 가슴으로 흘러내리는 그 무언가를 느낄 때다.

그 감정은 설명할 수 없기에 문학이 필요하다. 문학은 그 설명을 대신하지 않는다. 대신 여백을 내준다. 그리고 그 여백은 어느새 조용한 울음으로 채워진다. 한 사람의 존재가 고요히 증명되는 방식—그것이 바로 문학이 삶에 스며드는 방식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문장을 펼친다.
그 속에서 내 마음을 담그고,
말 없는 문장과 마주 앉아 조용히 되묻는다.
“나는 지금, 충분히 살아 있는가.”

그리고 그 문장은 대답하지 않는다.
대신 조용히 가슴속 어딘가를 쓰다듬는다.
그 순간,
나는 말없이 흐른다.
가슴으로 운다는 건,
삶이 더 깊어졌다는 뜻이다.

그냥, 행복해서
가슴으로 눈물이 흘러내릴 때—
그것이야말로 가장 문학적인 순간이자,
삶이라는 서사 속 가장 순결한 메타포이다.



ㅡ 청람 김왕식


keyword
작가의 이전글문학은 마음에 물 주는 일 ― 청람 김왕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