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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찬란한 이 순간을 살아내는 법

김왕식





지금, 찬란한 이 순간을 살아내는 법
― 과거를 벗고, 현재를 입는 지혜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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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누구나 이야기를 품고 산다. 그러나 그 이야기가 오직 과거에만 머물러 있다면, 삶은 박제된 화폭처럼 바래지기 시작한다. 과거는 말할수록 빛나기보다는, 오히려 그 빛의 뒷면에 드리운 그늘을 드러낸다. 오래된 영광을 반복해 읊조릴수록, 현재는 말없이 뒤로 물러나고, 삶은 서서히 제 색을 잃는다.

과거를 자랑하지 마라.
그 말은 누군가의 성취를 폄하하는 말이 아니다. 오히려 진정한 성취는 그것을 곱씹지 않아도 향기를 남긴다. 오랜 포도주가 조용히 숨 쉬듯, 진짜 과거는 소란스럽지 않다.

언젠가 어느 노인을 만난 적이 있다. 젊은 날에는 이름만 들어도 알 만한 기업의 임원이었고, 수많은 인재를 길러낸 존경받던 인물이었으나, 정작 오늘의 그는 한낱 ‘옛날 사람’으로 살아가고 있었다. 그는 매번 그 시절을 꺼내 말했다. “내가 말이야, 그땐 말이야…”로 시작되는 문장은 고요한 저녁의 공기를 뿌옇게 흐리게 했다.

그의 말에는 한때의 빛이 담겨 있었지만, 듣는 이들은 점점 눈길을 거두었다. 왜일까. 그것은 ‘지금’이 없기 때문이다. 이야기는 많지만, 온기가 없다. 그는 여전히 과거의 갑옷을 입고, 현재의 바람 속을 걷고 있었던 것이다.

삶을 사는 지혜는 지금을 살아내는 것이다. 마치 새벽에 내리는 이슬처럼, 그 순간만의 투명한 찬란함을 아는 사람은, 굳이 과거의 햇살을 자랑하지 않는다. 햇살은 늘 떠오르지만, 이슬은 지금 이 순간에만 반짝인다.

지금 가지고 있는 것을 즐기라.
그것이 설령 과거에 비해 초라해 보인다 해도, 지금의 삶은 결코 그보다 가볍지 않다. 작고 소박한 방 안에서도, 단 한 송이 꽃만으로도, 삶은 온전할 수 있다.

지금 내 손에 들린 찻잔, 내 입을 지나가는 한 모금의 따뜻한 차. 그것을 음미할 줄 아는 사람이 진정한 풍요를 안다. 지금 내 곁에 앉은 사람과 나누는 짧은 웃음, 그것이 전성기다.

고목에도 꽃은 핀다. 다만, 그 꽃은 청춘의 장식이 아닌, 견딘 시간의 깊이에서 피어난다. 현재를 살아내는 사람은 자기 나이의 꽃을 피울 줄 아는 사람이다. 자신을 낡은 이야기 속에 가두지 않고, 오늘을 오늘로 품는 용기를 지닌 이다.

지금을 산다는 것은, 현재를 자랑하라는 뜻이 아니다. 다만 어제를 놓아야 오늘의 손을 잡을 수 있다는, 삶의 이치를 잊지 말라는 뜻이다.

바람은 늘 앞으로 분다.
과거를 향해 달리는 사람의 등에
현재의 바람은 닿지 않는다.

삶이 아름다운 이유는,
지금 이 순간이 다시 오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니 과거를 자랑하기보다,
지금을 사랑하라.
그것이 진정, 고요한 자랑이 된다.




ㅡ 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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