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고난을 넘는다는 것, 단단해지는 법

김왕식






오늘 인문학 강의 자료이다.






고난을 넘는다는 것, 단단해지는 법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누구나 인생에서 고난을 맞이한다. 갑작스레 찾아온 상실, 길게 이어지는 무기력, 뜻대로 풀리지 않는 현실의 고비들. 고난은 예고 없이 찾아오지만, 그때마다 우리는 스스로에게 묻는다. “나는 이것을 어떻게 넘어설 수 있을까?”

고난은 처음엔 거대한 파도처럼 느껴진다. 나를 삼키고, 삶의 방향을 잃게 만든다. 그러나 삶은 알려준다. 그 파도를 ‘이야기’로 만들 수 있다면, 우리는 다시 땅을 딛고 일어설 수 있다는 것을.

첫 번째 방법은 ‘서사적 거리두기’이다. 고난은 겪을 땐 아프지만, 돌아보면 하나의 서사가 된다. 마음속 무거운 감정들을 종이에 옮겨보자. 일기로, 수필로, 블로그 글로 써보는 것이다. 내가 겪은 일들을 소설처럼 구성해 보면, 감정은 정리되고, 상황은 객관화된다. 그리하여 고통은 줄고, 스스로 해답을 발견하는 여유가 생긴다.

하지만 글을 쓴다고 당장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여전히 현실은 버겁고, 변화는 느리다. 이럴 땐 ‘지금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는 실행적 사고가 필요하다. 고난의 본질은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 있다. 하지만 우리가 오늘 안에서 단 한 가지라도 선택할 수 있다면, 그것이 회복의 시작이 된다. 책상 정리, 짧은 산책, 메일 하나 정리하기. 작고 사소해 보여도, 그 ‘성공 경험’이 무기력을 이겨내는 단단한 기반이 되어준다.

그래도 마음은 여전히 무겁다. 인간은 말하지 않으면, 감정이 고여 독이 된다. 그래서 ‘감정의 외주화’, 즉 ‘누군가에게 말하는 것’이 중요하다. 꼭 해결책을 주는 사람일 필요는 없다. 나의 이야기를 묵묵히 들어줄 단 한 사람이면 된다. 말이 어렵다면, 편지나 음성 메모로 털어놓아도 좋다. 말하기는 감정을 언어로 조직화하는 행위이자, 상처의 실체를 바라보는 거울이다.

그리고 우리는 자문해보아야 한다. ‘이 고난이 내게 무엇을 묻는가?’ 단지 왜 나에게 이런 일이 닥쳤는가를 묻기보다, 이 일이 내게 어떤 성숙을 요구하는 가를 질문하라. 역경은 우리의 틀을 부수려는 것이 아니라, 그 틀 너머를 확장하라는 신호일지도 모른다. 질문은 감정을 이성으로 옮겨주며,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서 방향을 잡게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혼자서는 쉽지 않다. 그런 순간, 우리는 자신보다 더 큰 고난을 견딘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어야 한다. 헬렌 켈러, 빅터 프랭클, 안네 프랑크, 혹은 이순신 장군. 그들은 절망 속에서도 빛을 잃지 않았다. 그들의 기록을 읽으며 우리는 깨닫는다. “그들도 견뎠다면, 나도 가능하다.” 이것이 바로 모델링 전략이다. 나보다 앞서 이 길을 걸었던 자들의 발자국은, 나의 내면에 새로운 발걸음을 내딛게 한다.

결국, 고난은 우리를 부수기 위한 것이 아니다. 고난은 삶이 우리를 조용히 깎아가는 조각칼이다. 거친 조각 밑에는 더 단단하고 아름다운 인간의 형상이 감춰져 있다. 도망치지 않고, 머무르지 않고, 흐르게 두며, 삶은 우리를 빚어낸다.

비비언 그린의 말처럼,
“삶은 폭풍을 피하는 법이 아니라, 빗속에서 춤추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우리는 넘어지는 법이 아니라, 다시 일어서는 법을 배운다.
쓰러진 자리에 오래 머물기보다, 그 자리를 배움의 지점으로 바꾸는 것.
그것이 고난을 단단함으로 바꾸는, 인문학적 회복의 기술이다.

당신이 오늘 이 글을 읽고 있다면, 이미 일어설 준비는 끝난 것이다.
삶은 늘 지금부터다.



ㅡ 청람 김왕식

keyword
작가의 이전글지금, 찬란한 이 순간을 살아내는 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