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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찬상 시인의 '반가사유상' ㅡ 신춘문예 수상작

김왕식










반가사유상半跏思惟像




시인 최찬상




면벽한 자세만 철로 남기고 그는 어디 가고 없다

어떤 것은 자세만으로도 생각이므로 그는 그 안에 있어도 없어도 그만이겠다

한 자세로 녹이 슬었으므로 천 갈래 만 갈래로 흘러내린 생각이 이제, 어디 가닿는 데가 없어도 반짝이겠다





* 문화일보 2014 신춘문예 시 당선작

-『2014 신춘문예 당선시집』(문학세계사, 2014)




최찬상 시인의 반가사유상
― 사라져 있음의 존재론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최찬상 시인의 〈반가사유상〉은 ‘존재하지 않음’으로부터 ‘존재함’을 역설적으로 증명해 내는 내밀한 사유의 시다. ‘면벽한 자세만 철로 남기고’라는 첫 행에서 이미 시인은 실존의 자리를 비워둔다. 반가사유상(半跏思惟像)은 실물의 부재가 아니라 ‘자세의 지속’을 통해 사유의 형상을 전시한다. 그는 “어디 가고 없다”지만, 그 자리에 남은 ‘자세’는 오히려 ‘존재의 증거’가 된다.

이 시는 육체의 소멸이 곧 존재의 해체가 아님을 말한다. 자세는 형태지만, 형태는 곧 생각이다. “어떤 것은 자세만으로도 생각이므로 / 그는 그 안에 있어도 없어도 그만이겠다”라는 구절은 단지 형이상학적 관념의 반복이 아니다. 이는 ‘사라진 자’의 자리에 ‘생각’이 어떻게 남는가에 대한 깊은 성찰이다. 사람은 사라져도 생각은 자세로 남는다. 그리고 그 자세는 침묵 속에서도 말을 건넨다.

“한 자세로 / 녹이 슬었으므로”라는 시구는 시간의 무게를 드러낸다. 이 자세는 찰나가 아니라 영겁을 견뎌온 고요한 항거다. 녹이 스는 동안, ‘천 갈래 만 갈래로 흘러내린 생각’은 더 이상 방향을 묻지 않는다. 생각은 목적 없이 흘러도 반짝인다. 여기서 반짝임은 화려함이 아닌 ‘존재의 명징성’이다. 최찬상은 도착하지 않는 생각조차 유효하다고 말한다. 목적보다 ‘머묾의 윤리’를 말한다.

〈반가사유상〉은 시조차 침묵하고자 하는 순간의 언어다. 시인은 이 시에서 최소한의 표현으로 최대한의 사유를 건져낸다. 군더더기 없는 문장은 마치 반가사유상의 단정한 무릎처럼, 정제된 고요로 독자를 앉힌다. 시적 화자는 말하기보다 ‘머무름’을 택하며, 독자에게는 ‘생각하는 자세’ 하나를 유산으로 건넨다.

이는 시가 아니라 불상처럼 느껴진다. 조각이 아니라 시각적 침묵의 언어. 최찬상 시인의 〈반가사유상〉은 ‘없는 자리에 남은 것’이 어떻게 존재를 환기시키는지를, 담백하지만 깊게 밀어붙인 작품이다. 그가 향한 방향은 ‘도착’이 아니라 ‘머무름’이며, 그 머무름이야말로, 시가 도달해야 할 내면의 진경이다.



ㅡ 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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