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왕식
윤동주
■
눈
시인 윤동주
누나!
이 겨울에도,
눈이 가득이 왔습니다.
흰 봉투에
눈을 한 줌 넣고
글씨도 쓰지 말고
우표도 붙이지 말고
말쑥하게 그대로
편지를 부칠까요
누나 가신 나라엔
눈이 아니 온다기에
■
순백의 봉투, 사라진 주소를 향한 서정의 사신
― 윤동주의 〈눈〉에 대하여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윤동주의 시 〈눈〉은 슬픔을 말하지 않고 슬픔을 쓰는 시다. 애도의 문장조차 절제되고, 그리움의 언어마저 침묵에 가까운 시. 이 작품은 한 줌 눈에 실려가는 기억의 편지이며, 더는 도달할 수 없는 ‘사라진 주소’를 향한 마지막 인사다.
첫 행 “누나! / 이 겨울에도, / 눈이 가득이 왔습니다”는 문장의 높낮이 없이도 강한 감정을 일으킨다. ‘누나!’라는 단 한 단어의 호명은, 모든 시적 진심을 응축해 낸 울림이다.
이 부름은 육성보다 내면의 떨림으로 들린다. 눈 내리는 겨울, 그 하얀 풍경을 누이에게 전하고픈 마음은 눈보다 더 무겁고, 하늘보다도 맑다.
“흰 봉투에 / 눈을 한 줌 넣고 / 글씨도 쓰지 말고 / 우표도 붙이지 말고”라는 구절은, 시인이 얼마나 조용하게 애도를 건네는지를 보여준다.
그는 말 대신 눈을 보내고자 한다. 눈은 찢어지지 않으며, 번지지 않으며, 불타지 않는다. 그것은 가장 깨끗한 마음의 결정이다. 말도, 형식도 없이 보내고자 하는 이 편지는, 시가 다다를 수 있는 가장 높은 침묵의 수준이다.
“말쑥하게 그대로 / 편지를 부칠까요”라는 대목은 시인이 문학을 ‘봉투처럼 단정한 것’으로 여긴다는 인식을 전한다. 여기서 ‘말쑥함’은 정갈한 언어의 단련이며, 동시에 더는 고치지 못하는 운명에 대한 복종이다.
눈을 한 줌 봉투에 넣어 보내겠다는 상상은 시인의 마음이 더는 머물 곳이 없는 데서 출발한다. 그에게 언어는 눈처럼 잠깐 왔다가 사라지는 것에 가깝다.
그리고 마지막 행. “누나 가신 나라엔 / 눈이 아니 온다기에.”
이 한 줄은 시 전체를 전복시킨다.
이 시는 살아 있는 자가 죽은 이를 부르는 것이 아니라, 죽은 자의 풍경을 상상하며 살아 있는 자의 세계를 되돌아보는 슬픈 명상이다.
누나가 가신 그곳은 이 세상과 다르며, 그곳에는 눈이 내리지 않는다. 눈이 오지 않는 세계를 향해 눈을 보내고 싶은 시인의 마음. 그것이 이 시의 중심이다.
〈눈〉은 애도와 서정, 부재와 존재 사이의 경계를 가장 투명한 언어로 넘나 든다. 윤동주는 눈이라는 자연현상을 통해, 시가 어떻게 인간의 정서를 담아낼 수 있는지 증명해 낸다. 눈은 여기서 단순한 소재가 아닌, 마음을 실어 보내는 운송수단이며, 동시에 시의 본질이다.
말하지 않음으로써 가장 많은 말을 하는 시.
윤동주의 〈눈〉은 바로 그 정적 속에서, 우리 마음 깊은 곳에 하얗게 내려앉는다.
이 시를 읽는 우리는 결국 한 장의 편지 앞에 선다.
그 편지는 봉투조차 열지 않아도, 이미 눈 속에 쓰여 있다.
그리고 그 눈은 지금도, 누군가의 마음 위에 조용히 내리고 있다.
ㅡ 청람 김왕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