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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과 함께 떠나는 삼국지 여행5ㅡ1

장비 장판파 전투 ㅡ 김왕식



장비 장판파 전투


삼국지 5ㅡ1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과 함께 떠나는 삼국지 여행



장판파의 장비, 천하를 막다
― 한 사람의 분노가 천하를 멈추게 했다





유비가 형주를 차지하기까지 수많은 고난이 있었지만, 그중 가장 극적인 순간은 장판파(長坂坡)에서 벌어졌다. 이 장면은 삼국지 전체에서도 손에 꼽히는 대서사이자, 인간의 절망과 용기의 극한을 보여주는 명장면이다.

조조는 원소를 무너뜨린 후 형주를 차지하고, 곧바로 남쪽으로 세력을 확장하려 했다. 유비는 형주의 민심을 얻었지만, 아직 군세가 약했다. 게다가 조조는 형주 점령 후 유비를 멸망시키기 위해 대군을 보내 공격을 감행했다.

유비는 군사적 대응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하고, 백성들을 이끌고 남쪽으로 피난한다. 남녀노소, 병자와 어린아이까지 대열에 섞여 있었다. 이는 단순한 군대 이동이 아닌, 생명을 건 대이동이었다. 그러나 조조의 기마병은 무서운 속도로 뒤를 쫓아왔다.

급박한 순간, 장비가 나선다. 그는 군사를 거의 잃고 소수의 병사만 이끌었지만, 장판교(長坂橋) 근처에서 결사항전을 결심한다. 형세는 절망적이었다. 적은 수만 명, 이쪽은 수십 명. 그러나 장비는 두려워하지 않았다.

장비는 장판교를 건너 백성들과 유비 일행을 피신시키고, 홀로 다리 위에 남아 창을 잡는다. 그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적들을 향해 고함친다.

“나는 장익덕(張翼德)이다! 감히 나에게 덤비는 자가 있느냐?”


그 한마디에 조조의 기마병 수천이 얼어붙는다. 누구도 섣불리 나서지 못했다. 장비의 기세는 단순한 물리적 힘이 아니라, 죽음을 각오한 인간의 결기로서, 적병의 심장을 움켜쥐었다.

장비는 다리 위에서 소리치며 창을 내저었다. 강렬한 기세는 실제 병력보다 몇 배나 크게 보였고, 적군은 “이 자를 얕보면 모두 죽는다”는 공포에 휩싸였다.
그 덕분에 유비 일행은 무사히 장강 하류로 탈출할 수 있었다.

장판파는 단순한 전술적 승리가 아니었다. 그것은 패주의 길목에서 오히려 천하를 흔든 의지의 외침이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거칠지만 순수했던 장비가 있었다.




제5ㅡ1회 삼국지 평

장판파의 장비, 천하를 막다




■ 등장인물 특징

장비(張飛)

성격은 거칠고 충동적이지만, 위기 앞에서는 누구보다 냉정하고 담대했다. 숫자에 겁먹지 않고, 목숨보다 신의를 중시했다. 다리 위에서 홀로 천하의 병마를 멈춘 장비는, 무력이 아니라 '심장으로 싸운 무장'이었다.

유비(劉備)

백성을 버리지 않고, 패주 중에도 민심을 품은 리더. 병력 약세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사람을 지키려 했다. 유비의 진심이 있었기에 장비도, 관우도, 백성들도 그의 곁을 떠나지 않았다. 그는 힘보다 마음으로 통치하는 군주였다.

조조(曹操)

장비 하나를 섣불리 공격하지 못할 만큼 신중한 전략가. 무모하게 돌진하기보다 상대의 기세를 살피고, 심리전을 중시했다. 조조는 장비를 얕보지 않았고, 그 조심성이 결국 긴 패주극을 가능하게 했다.





현대 우리에게 주는 긍정적 교훈


장판파는 ‘기세’가 현실을 뒤바꿀 수 있음을 보여준다. 때론 절망적 상황에서도 마음을 다잡는 한 사람이 있다면, 조직이나 공동체는 살아남을 수 있다. 장비는 병력이 아니라 정신으로 싸웠고, 공포를 이겨낸 기세로 적을 멈췄다. 오늘날에도 마찬가지다. 위기의 순간에 필요한 것은 많은 사람이나 자원이 아니라, 흔들리지 않는 한 사람이다. 조직의 위기는 외부 공격보다 내부의 공포에서 시작된다. 장비는 그 공포를 막았고, 유비는 사람을 잃지 않았다. 이 회는 말한다. 가장 무서운 적은 숫자가 아니라, 두려움이다. 가장 강한 힘은 총이 아니라, 결심이다.



■ 삼국지 내용에서 아쉬운 점


장판파의 장비는 극적인 감정선을 지녔지만, 삼국지 본문에서는 다소 서사적 압축에 의해 감동이 덜하다. 장비가 어떤 감정으로 다리 위에 섰는지, 두려움을 어떻게 극복했는지에 대한 심리 묘사는 생략된다. 또한 조조 군의 당황과 내부 분열도 사실 전달에 그쳐, 긴장감과 절박함이 덜 느껴진다. 장비의 고함 한 번에 수천 군이 얼어붙는 장면은 상징적이지만, 문학적으로 장비의 내면 갈등과 인간적 약점을 살짝 드러냈다면 오히려 그의 위대함이 더 부각될 수 있었다. 이 회는 ‘무력’이 아니라 ‘심장의 힘’을 보여준 사건이었다는 점에서, 심리적 서술이 아쉬운 장이다.


ㅡ 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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