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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청람문학』 창간호를 펴내며

김왕식






권두언


『한국청람문학』 창간호를 펴내며




문학은 언어의 옷을 입은 인간의 내면이고, 한 문명의 가장 조용한 증언입니다. 말이 넘치고 의미가 빠르게 소모되는 이 시대에, 『한국청람문학』은 “말이 곧 마음이 되기를” 바라는 사람들의 고요한 염원으로 태어났습니다. 이 책은 단지 작품을 모은 문예지가 아닙니다. 문장 너머에 살아 있는 삶의 체온과, 언어 안에 잠든 시대의 숨결을 꺼내어 독자 앞에 조심스럽게 놓는 ‘한 권의 온기’입니다.

‘청람(晴嵐)’은 맑은 날 산허리를 감싸 안는 아지랑이 같은 기운을 뜻합니다. 그것은 높지 않지만 깊고, 요란하지 않지만 오래 머무는 기운입니다. 우리가 이 이름을 택한 것은, 문학이 바로 그러해야 한다는 믿음 때문입니다. 세속의 속도에 휩쓸리지 않고, 말보다 마음을 앞세우며, 문단이라는 좁은 담장을 넘어 인간의 넓은 마당으로 나아가는 문학. 『청람문학』은 그런 문학을 지향합니다.

이 창간호에는 시와 산문, 수필과 평론이 담겨 있습니다. 그러나 실린 장르보다 더 주목해야 할 것은 그 모든 글이 ‘삶의 진심’을 통과한 문장이라는 점입니다. 잘 쓴 글보다 먼저, 진심을 담은 글, 기술보다 태도가 앞선 글들이 이곳에 있습니다. 우리는 이 문예지를 통해, 잊혔던 말들이 다시 살아나고, 침묵에 머물던 생각들이 다시 흐르기를 소망합니다.

이제 문학은 다시 사람 곁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청람문학』은 이름보다 문장을, 이력보다 온기를, 주목받는 속도보다 오래 남는 깊이를 선택합니다. 우리는 지금 거대한 소음의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그런 시대에 ‘작은 목소리’로 말하는 일은 어쩌면 가장 용기 있는 선택일지도 모릅니다. 청람문학은 그 용기를 품고 앞으로 나아가려 합니다.

이 창간호는 시작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문학의 본질로 되돌아가는 ‘회귀의 선언’이기도 합니다. 앞으로 우리는 더 많은 삶의 결들을 이 지면 위에 포개고자 합니다. 더 많은 사람의 마음이 이 문학을 통해 서로 닿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 책을 펴내기까지 함께해 주신 모든 필자 여러분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그리고 지금 이 권두언을 읽는 당신이, 청람의 첫 독자로 이 자리에 함께해 주셨다는 사실이 이 문예지를 더 의미 있게 만듭니다.

『한국청람문학』은 문학을 단지 읽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는 방식으로 선택하는 이들을 위한 책입니다. 우리는 믿습니다. 말보다 조용한 문장이 사람을 바꾸고, 문학이 한 시대의 인격이 될 수 있다는 것을.

2025년 6월 10일

한국청람문학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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