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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친구 트럭운전사 자연인 안최호가 꿈꾸는 세상

김왕식








내 친구 트럭운전사 자연인 안최호가 꿈꾸는 세상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새벽 공기가 뺨을 때리는 시간, 안최호는 조용히 트럭에 시동을 건다. 차가운 철의 몸뚱이가 숨을 쉬고, 대지의 등줄기를 따라 그의 하루가 시작된다. 그가 몰고 가는 건 단지 물건만이 아니다. 누군가의 생계요, 누군가의 기다림이며, 때로는 도시와 시골 사이를 오가는 사람의 체온이다. 낮엔 매연 속에서, 밤엔 별빛 밑에서. 그게 그의 삶이다. 자연에 기대어 사는 사람, 도시의 끝과 들판의 시작을 오가는 ‘두 바퀴 위의 철학자’, 그게 안최호다.

그가 바라는 세상은 거창하지 않다. 회의실에서 마이크 잡은 사람들은 자꾸 ‘대전환’이니 ‘혁신’이니 말하지만, 최호의 바람은 단순하다. “숨 좀 편하게 쉬게 해 달라.” 차선 하나만 건너도 눈초리가 날카로운 세상, 빨리 가려다 인생도 놓치는 사람들 사이에서 그는 말한다. “좀 천천히 가도 괜찮잖아? 그게 그렇게 큰 죄야?” 한 숟가락 국밥의 온기처럼, 사람 대 사람으로 마주 앉아 ‘밥심’으로 사는 세상이면 좋겠단다.

휴게소에서 미지근한 커피 하나에 웃고, 옆자리에 앉은 노포 아주머니가 건넨 껌 하나에 힘을 얻는다. 그런 그에게 “행복이 뭐냐”라고 묻자 돌아온 대답은 이랬다. “눈치 안 보고 사는 거. 고개 안 숙이고도 살 수 있는 거.” 그러곤 허허 웃는다. “그게 말이 쉽지, 요즘 세상에 누가 고개를 들고 살아. 다들 스마트폰만 보고 걷잖아.”

도심의 빌딩들 사이에선 찾아보기 어려운 인간 냄새를, 그는 산속 오두막에서 찾았다. 길어진 주차 브레이크 소리에 귀 기울이고, 소나기 오기 전 나무 냄새를 먼저 맡는다. 자연과의 교감이, 그의 정직한 삶의 일부가 되어 있다. 그는 말한다. “우린 자연을 돌본다고 말하는데, 사실은 자연이 우리를 돌보는 거야. 사람은 흙에서 와서 흙으로 가잖아. 너무 고개 빳빳이 들고 살 필요 없어.”

정치? 경제? 그에겐 너무 먼 얘기다. 대신 그는 ‘밥값’ 이야기를 자주 한다. 열심히 일하면 그만큼 돌아오는 세상. 손에 흙 묻히고, 등에 땀 흘리면 그 노고가 인정받는 세상. “내가 오늘 하루 무사히 다녀오면, 아내가 환하게 웃고, 애들이 ‘아빠 왔다’ 뛰어나오는 그 순간. 그게 나라 잘 돌아가는 거 아냐?” 그렇다. 그런 소박함이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행복인지도 모른다.

그는 이따금 이런 얘기도 한다. “정치하는 사람들은 왜 맨날 싸우기만 해? 밥 한 그릇 같이 먹어봐. 그러면 싸움 안 나. 고기 좀 얹어주면 금방 친해지지.” 이렇듯, 삶의 정수는 말이 아니라 밥상에서 나온다. 그게 그의 철학이다. 세상이 복잡할수록 그는 더 단순해지려 애쓴다. 누군가는 ‘촌스럽다’ 하겠지만, 그는 안다. 진짜 큰길은 산속 오솔길처럼 조용히 나 있는 법이라고.

그래서 그는 말한다. “난 위대한 세상 안 바라. 그냥, 옆집 사람하고 웃으며 인사 나누고, 길 가다 낯선 사람도 손 흔들 수 있는 그런 세상. 내 아이가 학교에서 왕따 걱정 안 하고, 우리 어르신들이 병원비에 쩔쩔매지 않는 세상. 그게 나라 아냐?”

그의 손엔 언제나 운전대가, 어깨엔 흙먼지가 묻어 있다. 하지만 그 흙먼지 속엔 우리가 잊은 삶의 향기가 숨어 있다. 그가 바라는 세상은 어렵지 않다. 그저 우리 모두, 조금 덜 무섭고, 조금 더 따뜻한 얼굴로 하루를 시작할 수 있는 그런 곳.

그리고 그가 오늘도 조용히 시동을 거는 새벽, 대한민국은 아직 가능성을 향해 달리고 있다.


ㅡ 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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