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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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의 초록편지
시인 청민 박철언
짙푸른 하늘 아래
아카시아 꽃향기 가득한
싱그러운 6월의 언덕
보리가 익어가는 밭 언저리에
양귀비 꽃이 곱게 피고
울타리 넝쿨장미, 수국
이팝나무 산딸나무 조팝나무가
말을 건네온다
축복 같은 햇살이 더해지고
감미로운 비가 내리면
떠나간 그대
금낭화 같은 그대를
그리워하는 아픔은 깊어만 간다
물소리 새소리 들으며
미소 짓는 바람 속에
보고 싶은 마음을 담아
초록편지를 적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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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민 박철언 시인의 「6월의 초록편지」
― 자연과 그리움이 직조한 서정의 편린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청민 박철언 시인의 「6월의 초록편지」는 한 편의 아름다운 자연서간이자, 그리움의 정서가 짙게 배어든 서정적 엽서다. 시인은 유월의 자연을 감각적으로 포착하며, 그 안에 사랑의 기억과 이별의 아픔, 그리고 다시 피어나는 삶의 은유를 섬세하게 심어놓는다.
이는 단순한 자연 찬미를 넘어, 상실 이후의 회복과 존재의 회한을 ‘편지’라는 형식 안에서 조용히 응축한 시적 성찰이다.
시의 첫 연은 계절의 색채와 향기로 문을 연다. “짙푸른 하늘아래 / 아카시아 꽃향기 가득한 / 싱그러운 6월의 언덕”이라는 구절은 청각과 후각, 시각을 동시에 자극하며 유월의 기운을 단박에 현현시킨다.
여기에 등장하는 아카시아는 단순한 계절의 지표를 넘어, 기억을 환기시키는 메타포로 작동한다. 이는 후속 연에서 드러나는 ‘떠나간 그대’와 맞물려, 자연이 곧 회상의 매개이자 감정의 저장소임을 드러낸다.
보리밭 언저리의 양귀비, 울타리의 넝쿨장미, 그리고 수국과 조팝나무, 이팝나무 등 식물의 열거는 단순한 풍경 묘사를 넘어서 하나의 교향악처럼 읽힌다.
이 식물들의 이름은 각기 다른 시간성과 감정을 내포하고 있으며, 시인은 이를 통해 자연을 말하는 존재로 승화시킨다. “말을 건네온다”는 시구는 자연이 단지 배경이 아니라, 상실의 감정과 교감하는 대화의 상대임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세 번째 연에서는 정서가 한층 응축된다. “금낭화 같은 그대를” 그리워하는 마음은, 단순한 슬픔이 아니라 삶을 관통하는 아픔으로서의 상실을 담고 있다. 금낭화는 꽃잎이 주머니처럼 생긴 꽃으로, 그 형상 자체가 내면의 허전함을 상징하는 메타포로 읽힌다.
이때 축복 같은 햇살과 감미로운 비는, 상실 이후에도 계속해서 이어지는 삶의 리듬이자, 회복을 이끄는 자연의 은혜로 제시된다. 시인의 자연관은 단호하지 않되 깊으며, 치유와 순환의 믿음을 품고 있다.
마지막 연에서는 편지의 화자가 바람 속에 “보고 싶은 마음을 담아 / 초록편지를 적고 싶다”라고 말한다. 바람과 편지라는 시적 장치는 부재의 존재에게 보내는 마음의 통로다. 이는 청민 시인의 문학적 미의식이 단지 존재를 노래하는 데 그치지 않고, 관계와 기억의 지속성을 향해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초록편지”라는 표현은 곧 생명력이며, 그리움의 언어를 자연에 새겨 다시 보내는 시적 행위다.
청민 박철언 시인은 시에서 ‘이름 있는 것들’을 섬세히 불러냄으로써, 사라진 존재와의 내적 대화를 가능케 한다. 그의 미의식은 자연을 실재적 감정의 그릇으로 활용하며, 꽃 한 송이, 나무 한 그루에 삶의 기억을 귀속시키는 방식으로 전개된다. 그는 생명의 흐름 속에서 회한을 발견하고, 그 회한을 아름다움으로 돌려주는 언어의 장인이다.
「6월의 초록편지」는 계절과 감정, 존재와 기억이 포개진 한 편의 서정시로, 그 속에 박철언 시인이 살아온 삶의 겸허함과 인간에 대한 깊은 연민, 자연에 대한 신뢰가 오롯이 배어 있다. 그가 바라보는 세계는 꽃과 바람과 그리움으로 이루어진 편지지이며, 시는 그 편지 위에 조용히 적히는 생의 인사말이다.□
ㅡ 청람 김왕식
박철언 시인
주광일 시인, 김왕식 평론가, 박철언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