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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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관성의 온도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객관적 시각을 유지하는 것이 때로는 상대를 섭섭하게 할 수도 있다. 이는 인간관계에서 흔히 겪게 되는 아이러니다. 누군가에게 공정하고자 노력하는 태도가 오히려 그 사람의 마음을 멀어지게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은 씁쓸하면서도 인간 심리의 본질을 건드리는 문제다.
객관성은 감정의 간섭을 줄이고 사실에 입각한 판단을 내리게 해 준다. 그만큼 신뢰를 주기도 하고, 균형 있는 시선으로 사안을 바라보는 힘이 된다. 그러나 문제는 관계의 온도다. 사람은 논리로만 움직이지 않는다. 때로는 감정적 동의와 공감이 진실보다 더 중요하게 작용하기도 한다. 친구의 편에 서주기를 기대할 때, 혹은 내 입장을 먼저 이해해 주기를 바랄 때, 상대가 ‘객관적으로’ 굴면 마음이 서운해지는 것이다.
특히 가까운 사이일수록 객관성은 양날의 칼이 된다. 애정과 신뢰가 기반이 된 관계일수록 ‘네가 내 편이 되어줄 줄 알았는데’라는 기대가 존재한다. 그런 관계에서 ‘난 중립이야’ 혹은 ‘사실은 네 잘못도 있어’라는 말은 상대의 기대를 배반하는 행위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그것이 정당한 판단이라 하더라도, 감정은 논리를 이기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고 무작정 감정에 치우치자는 말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균형이다. 객관성을 유지하되, 말의 방식과 마음의 방향은 언제나 상대를 향해야 한다. 감정적 지지는 주되, 판단은 공정하게 하려는 태도.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성숙이다. 객관적인 시각을 가지되, 상대의 입장에 먼저 귀 기울이고 충분히 공감해 주는 자세가 필요하다.
객관적 시각이 상대를 섭섭하게 만드는 것은, 단지 사실을 말했기 때문이 아니라, 그 말이 전달되는 방식에 온기가 없기 때문이다. 관계는 정보보다 마음을 먼저 주고받는 공간이다. 사실이 옳더라도, 그 사실을 감당할 마음의 준비가 안 된 사람에게 그것은 칼날이 될 수 있다.
그래서 때로는 말보다 침묵이 낫고, 충고보다 경청이 낫다. 객관성을 잃지 않되, 사람의 마음을 잊지 않아야 한다. 진실은 관계를 무너뜨리는 도구가 아니라, 관계를 지탱하는 기둥이 되어야 한다. 그 기둥은 언제나 따뜻한 말과 이해심이라는 벽돌 위에 세워질 때 가장 견고하다.
결국 중요한 건 옳은 말이 아니라, 옳은 마음이다. 객관적인 판단은 냉철한 머리로 하되, 따뜻한 심장으로 다가가야 한다. 그래야만 객관성도, 관계도 함께 지켜낼 수 있다.
ㅡ 청람 김왕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