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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끊어진 철길 위에 다시 피어나는 염원
― 임진각에서 통일을 바라보다
임진각에 들렀다.
그곳은 단순한 관광지가 아니었다. 철조망 너머로 바라보는 북녘의 땅은 가깝고도 먼, 어쩌면 우리 안의 그림자 같은 존재로 서 있었다. 가장 먼저 시선을 붙잡은 것은 끊어진 철도, 그리고 포탄에 구멍이 뚫린 채 멈춰 선 낡은 기차였다. 그 검게 그을린 강철의 몸체는 말이 없었지만, 침묵이 곧 울부짖음이었다. 멈춰 선 그곳에서 시간도 함께 멈춘 듯, 오랜 기다림과 아픔이 켜켜이 녹슬어 있었다.
분단의 현실은 멀리 있지 않았다. 그것은 이념의 차이가 아니라, 삶의 단절이었고, 기억의 손실이었다. 철길은 달려야 할 길이 아니라, 멈춰진 운명의 상징이 되었고, 기차는 사람을 실어 나르지 못하는 무용의 조각이 되어버렸다. 그 길을 따라 북으로 향하던 수많은 열차는 더 이상 사랑하는 이를 데려가지 못하고, 돌아오지 못한 이름들의 시간을 껴안은 채 그 자리에 멈춰 섰다.
그러나 임진각은 단지 슬픔만이 머무는 곳은 아니다. 그곳엔 수많은 사람들이 걸어왔다. 할아버지는 돌아가지 못한 고향을 그리워하며 국수 한 그릇 앞에 눈시울을 붉히고, 젊은이들은 철조망 너머로 손을 흔들며 통일을 상상한다. 그 낡은 철도 위에는 지난 세월의 눈물이 녹아 있지만, 동시에 미래를 향한 희망의 발걸음이 겹쳐져 있다. 분단은 상처이지만, 그 상처를 직면한 곳에서 염원은 더 단단해진다.
임진각에 선 이 순간, 나는 묻는다. 왜 통일이어야 하는가.
그것은 단순한 정치적 통합이 아니다. 통일은 단절된 혈육의 눈물을 닦아주는 일이고, 이념보다 삶이 우선이라는 것을 확인하는 일이다. 그곳에선 여전히 누군가가 형제를 찾고, 부모를 기다리고 있다. ‘한 민족’이라는 말이 더 이상 구호가 아니라, 다시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현실이 되기 위해선 누군가는 지금 이 순간에도 그 염원을 꺼내 들고 있어야 한다.
분단은 삶을 둘로 갈랐다. 언어는 같지만 말투는 달라졌고, 같은 민족이지만 서로를 낯설게 바라보게 되었다. 통일은 잃어버린 반쪽을 되찾는 일이다. 경제적 이득이나 지정학적 유불리를 떠나, 인간이 인간을 향해 다시 손을 내미는 회복의 서사다. 우리는 그것을 그저 먼 미래로 미뤄둘 수 없다. 누군가는 이미 너무 오래 기다렸고, 누군가는 여전히 철조망 아래 손을 맞잡을 날을 꿈꾸고 있기 때문이다.
임진각에서 바라본 하늘은 맑았다. 아이들이 평화의 종을 치며 웃고, 관광객들은 사진을 찍지만, 나는 철조망 사이에 걸린 누군가의 쪽지 하나에 눈길이 멈췄다. “엄마, 저는 지금도 기다려요.” 이 짧은 문장은 정치나 군사 논리를 넘어선 진실의 언어였다. 그 아이가 자라 어른이 되기 전, 그 기다림이 더는 유예되지 않기를 바란다.
통일은 언젠가가 아니라, 지금 마음속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그것은 연민의 감정이 아니라, 책임의 언어로 실현되어야 할 과제다. 우리는 서로를 다시 이해해야 하고, 오래된 상처를 덧칠하지 말고, 정직하게 마주해야 한다. 통일은 결코 쉬운 길이 아니다. 그러나 가장 인간적인 길이며, 민족이 진정으로 성숙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철길은 멈췄지만, 마음은 멈출 수 없다. 그 끊어진 철도 위에 우리는 다시 길을 내야 한다. 눈물이 지나간 자리에 희망을 놓고, 슬픔이 머물던 곳에 다시 사람을 실어 나르는 기차를 달리게 해야 한다. 그것이 우리가 이 땅에 살아 있는 이유이며, 후대에게 물려줄 진정한 평화의 유산이다.
임진각을 떠나며 나는 속으로 조용히 되뇐다.
“통일은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 가는 것이다.”
그리고 그 길의 첫걸음은, 이처럼 무너진 철로 앞에서 잠시 멈춰 서서, 조용히 가슴으로 기억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ㅡ 청람 김왕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