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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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의가 정의를 이긴 적은 없었다
— 정의의 시간은 느리지만 끝내 도달한다
안최호
역사적으로 불의가 정의를 이긴 적은 없다. 만약 이겼다 하더라도, 그것은 순간일 뿐이다. 이 짧은 문장은 정의와 불의, 시간과 진실의 본질을 꿰뚫는 날카로운 통찰이다. 우리는 종종 불의가 이긴 듯한 세상을 마주한다. 거짓이 진실을 누르고, 권력이 양심을 짓밟는 장면은 뉴스 속에서도, 일상 속에서도 흔하게 발견된다. 선한 사람이 외면받고, 오만한 자가 웃는 시대, 우리는 때로 혼란에 빠진다. 과연 정의란 무엇인가. 그리고 정말로 정의는 이길 수 있는가.
그러나 역사는 말한다. 정의는 언제나 느리게 움직이지만, 결코 멈추지 않는다고. 불의가 승리한 것처럼 보일 때조차, 그것은 ‘승리한 듯 보이는 장면’ 일뿐이지, 그 자체가 영원한 질서가 된 적은 없다. 불의는 속도가 빠르다. 그래서 단숨에 제 뜻을 관철시키는 데 익숙하다. 하지만 그것은 늘 조급하고, 불안하며, 결국 스스로 무너진다. 반면 정의는 마치 물처럼 스며들고, 나무처럼 자란다. 시간이 걸리지만, 뿌리가 깊고 단단하다.
예를 들어 보자. 역사 속 수많은 독재자와 폭군들. 그들은 한때 절대 권력처럼 군림했지만, 그 이름은 결국 교과서의 ‘반면교사’로 남았다. 힘으로 만든 평화는 진정한 평화가 아니며, 억지로 주입된 질서는 결국 그 안에서 균열이 일어난다. 정의는 때로 패배하는 듯 보이지만, 그것은 후퇴가 아니라 더 깊은 성찰을 위한 숙성의 시간이다. 광야의 시간은 길지만, 그 끝엔 반드시 약속의 땅이 기다린다.
불의가 이긴 것처럼 보이는 순간은 종종 우리를 낙심하게 만든다. 우리는 쉽게 절망하고, 때로는 체념하며, 정의를 믿지 않게 된다. 그러나 그럴 때일수록 더욱 눈을 들어야 한다. 그 순간에도 누군가는 고통을 견디며 진실을 말하고 있고, 어딘가에서는 작은 촛불 하나가 어둠을 밀어내고 있다. 정의는 함성보다 묵묵함 속에서 자라고, 환호보다 침묵 속에서 강해진다.
우리가 믿는 정의란 완벽하거나 이상적인 형태일 필요는 없다. 인간의 언어로 정의는 때로 부족하고 흔들린다. 하지만 그 본질은 타인을 위한 마음, 공동선을 향한 의지, 인간다움에 대한 믿음이라는 점에서 결코 변하지 않는다. 그것이 진실이라면, 때론 꺾여도 부러지지 않으며, 무너져도 다시 일어난다.
역사적으로 불의가 이긴 적은 없다. 단지 정의가 침묵했을 뿐이다. 혹은, 사람들이 그것을 듣지 않았을 뿐이다. 하지만 진실은 언제나 기다린다. 그를 이해해 줄 한 사람의 귀를, 한 시대의 양심을. 그러기에 우리는 정의가 ‘이긴다’는 표현보다, ‘남는다’는 말을 더 소중히 여겨야 한다. 진정한 승리는 단지 전장의 결과가 아니라, 기억 속에 오래도록 살아남는 가치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우리는 낙심하지 말고, 조급해하지도 말자. 불의가 당장 웃고 있더라도, 그것은 ‘순간’이라는 진실을 잊지 말자. 고요한 정의의 시간이 그 뒤를 따르고 있다는 믿음, 그 믿음이야말로 오늘을 견디게 하고, 내일을 밝히는 가장 단단한 빛이다.
자연인 안최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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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최호 작가
불의가 정의를 이긴 적은 없었다
— 정의의 시간은 느리지만 끝내 도달한다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안최호 작가는 “역사적으로 불의가 정의를 이긴 적은 없다. 이겼다면 그것은 순간이다”라고 역설한다.
이는 짪은 문장을 중심축으로, 정의와 불의의 관계, 그리고 시간 속에서 정의가 갖는 본질적 우위를 사유의 언어로 풀어낸 고품격의 문장이다. 전체 글은 단순한 윤리적 선악 구도를 넘어서, 인간과 사회, 역사와 시간의 층위 속에서 정의의 본질과 속성을 다각도로 조명하고 있다.
무엇보다 이 글이 돋보이는 지점은 속도와 깊이를 대조하는 미학적 구성에 있다. 불의는 “속도가 빠르다”는 묘사를 통해 조급하고 불안정한 권력의 속성을 상징하며, 반면 정의는 “물처럼 스며들고, 나무처럼 자란다”는 은유 속에서 그 유기적 성장과 뿌리의 깊음을 부각한다. 이는 단순히 관념적 이상으로서의 정의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고통과 침묵, 기다림 속에서 비로소 완성되는 실존적 정의의 과정을 설득력 있게 전달한다.
또한, 불의가 일시적으로 승리하는 듯 보일지라도, 그것은 “후퇴가 아니라 숙성의 시간”이라는 표현처럼, 정의가 힘을 잃는 것이 아니라 더 깊은 곳으로 잠행하고 있는 시간이라는 점을 강조함으로써 독자의 시선을 넓게 확장시킨다. 이러한 서술은 역사적 인식과 인간 내면의 윤리적 성찰이 유기적으로 결합된 필치라 할 수 있으며, 독자에게 일시적 낙심이나 냉소를 넘어서는 지속적 믿음과 의지의 중요성을 환기시킨다.
특히 “정의는 함성보다 묵묵함 속에서 자라고, 환호보다 침묵 속에서 강해진다”는 문장은 이 글의 중심 정조를 집약하는 시적 명문이다. 이는 정의를 하나의 외침이나 선전이 아닌, 내면의 가치로서 지속되는 것으로 바라보는 깊은 통찰이며, 독자에게 공명 이상의 각성을 일으키는 문장으로 기능한다.
결론에 이르러 “진정한 승리는 전장의 결과가 아니라, 기억 속에 오래도록 살아남는 가치”라고 하는 대목에서는 이 글의 철학적 사유가 정점에 이른다. 정의란 실시간으로 결판나는 것이 아니라, 인류의 기억과 역사의 도도한 흐름 속에서 결국은 남는 것, 지속되는 것이라는 태도가 이 글 전체를 관통한다.
요컨대 이 글은 단순한 규범적 글쓰기나 감상적 정의감에 머물지 않고, 시간과 인간, 사회와 신념을 관통하는 깊이 있는 철학적 성찰을 문학적으로 빚어낸 수작이다. 표현은 유려하되 감정에 치우치지 않고, 구조는 고요하되 사유는 뜨겁다. 불의의 일시적 승세에 낙담하는 현대 독자들에게 말보다 오래 남는 정의의 진실을 정제된 언어로 들려주는, 고결한 정신의 문장이라 할 만하다.
ㅡ 청람 김왕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