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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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
시인 하봉도
나 고적할 적마다
그대는
포근한 아침 햇살처럼
늘 내 곁에 머뭅니다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한다'는
소리 없는 은혜의 소리가
가슴에서 울려 퍼지는
한적한 기도의 시간
어느새
이슬 머금은 꽃망울 같이
촉촉이 젖는 눈시울
사랑이신 나의 구원이며
반석이시여
지난 삶 모두가
그대가 베푼 은총이었고
남은 삶도 그대 기뻐할
순종의 날 되게 하소서
만물 소생하는 봄날처럼
내 마음에도 새 소망의 꽃
활짝 피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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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의 언어로 피워낸 시심의 꽃
― 하봉도 시인의 「기도」를 읽고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하봉도 시인은 신앙과 시심이 절묘하게 교차하는 경계에서 고요하고도 깊은 언어의 꽃을 피워내는 시인이다. 그의 삶은 물질적 성취보다는 존재의 본질에 다가서려는 영혼의 노정이었으며, 그 여정 속에서 발견한 신적 임재와 내면의 고백은 언어를 통해 기도로 전환된다.
이번 시 「기도」는 그가 걸어온 삶의 노선과 미적 태도를 가장 온전히 드러내는 시편으로, 시와 신앙이 결코 분리될 수 없음을 문학적으로 증명한다.
시의 첫 행 “나 고적할 적마다 / 그대는 / 포근한 아침 햇살처럼 / 늘 내 곁에 머뭅니다”는 인간 실존의 고독 앞에 신적 위로가 어떻게 현현하는지를 아름다운 비유로 담아낸다.
여기서 ‘그대’는 단순한 애정의 대명사가 아니라, 시인의 구원자요, 절대자이며, 무한한 자비로 존재의 깊은 고요를 덮어주는 신의 상징이다. 고적함이야말로 신의 음성을 듣는 통로임을 시인은 이미 체득한 것이다.
이어지는 구절 “‘너로 말미암아 / 기쁨을 이기지 못한다’는 / 소리 없는 은혜의 소리”는 시적 감성과 신학적 인식이 만나는 절정이다. 소리 없는 은혜, 즉 영적 침묵 속에서 울려오는 내면의 진동은 세속적 언어로는 도저히 포착할 수 없는 차원이며, 이는 바로 하봉도 시인의 미학이 지향하는 내면의 울림이다. 그 울림은 기도 속에서 형체를 얻고, 언어를 통해 생명력을 부여받는다.
그 울림이 “이슬 머금은 꽃망울같이 / 촉촉이 젖는 눈시울”로 이어질 때, 시는 자연과 감정, 신앙과 육신이 겹쳐지는 시적 연금술의 무대로 변모한다. 하봉도 시의 가장 중요한 미학적 특징은 바로 이러한 ‘은총의 상징화’이다.
그는 자연을 은유의 도구로 삼아, 신의 사랑을 담담하고도 절절하게 표현해 낸다. 눈물은 단지 슬픔의 표현이 아닌, 신 앞에서의 자아의 녹아짐이며, 은총을 깨달은 영혼의 응답이다.
“사랑이신 나의 구원이며 / 반석이시여”라는 직설적 고백은 시인의 영적 실존이 바탕이 된 시의 중심축을 형성한다. 구원자이자 반석이신 신을 향한 시인의 절대 신뢰는, 그가 살아온 삶이 얼마나 깊은 믿음 속에 놓여 있었는지를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하봉도 시에게 있어 시는 감상의 대상이 아니라, 신과의 교통이며, 삶 그 자체다. 그것이야말로 그의 문학이 가지는 고유의 가치철학이다.
마지막 연 “만물 소생하는 봄날처럼 / 내 마음에도 새 소망의 꽃 / 활짝 피게 하소서”는 기도의 종결이자 새로운 삶의 시작을 알리는 시적 도약이다. 계절의 순환 속에 자신의 소망을 중첩시키는 이 비유는 단순한 희망이 아니라, 신 앞에서의 순종과 결단을 담고 있다. 그것은 단지 감정의 회복이 아니라, 존재의 전환을 요청하는 선언이며, 하봉도 시인의 시 세계의 본질이 가장 찬란하게 빛나는 지점이다.
요컨대, 하봉도 시인의 「기도」는 한 편의 기도문이자 동시에 문학적 신앙고백이다. 그는 시를 통해 신을 부르지 않고, 신을 통해 시를 부른다. 그에게 시는 기도의 또 다른 언어이며, 기도는 시적 진실의 궁극이다. 물소리보다 잔잔하고, 꽃향기보다 깊은 이 시는 영혼의 등불이 되어 독자에게 묻는다. “그대의 마음에도 봄은 피고 있는가.” 하봉도 시인의 시편은 그 물음 속에서 오늘도 우리 곁에 조용히 머문다.
ㅡ 청람 김왕식
□ 하봉도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