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성구 시인의 「붉은 장미 곁에서」ㅡ청람 김왕식

김왕식



황성구 시인



□ 황성구 시인의 시집









붉은 장미 곁에서



시인 황성구




그대가 다가왔을 때
나는 이미 눈을 감고 있었지요
그저 향기로만 느껴지는 그대
한 송이 피어오른 붉은 장미여

스쳐간 입술의 숨결
촉촉한 꽃잎 같았어요
우린 말하지 않아도 알았지요
같은 빛 속에 물들고 있다는 걸

그대 손끝 지나간 자리에
나의 마음은 살며시 떨었고
마법의 가시처럼 남은 그 느낌
한 번 닿으면 잊을 수 없었지요

그 사랑은 천천히 그러나 깊게
피우듯 들이마시듯
우리 서로의 중심을 향해
꽃처럼 조용히 열리고 있었지요

오뉴월의 밤은 길고
달빛조차 부끄러워 숨은 사이
그대와 나 숨죽이며 피어난
단 하나 계절의 여왕 장미여






“붉은 장미의 침묵, 그 고요한 심연의 떨림”
― 황성구 시인의 「붉은 장미 곁에서」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황성구 시인의 「붉은 장미 곁에서」는 육감적 감성의 내밀 內密한 언어로 그려낸 사랑의 성찬이자, 존재의 본질로 조용히 스며드는 서정의 결정체다. 시인은 사랑이라는 뜨거운 감정을 장미라는 비유를 통해 냉정하리만큼 절제된 정서로 다루며, 붉은 감각 너머 존재와 존재가 만나고, 침묵과 떨림이 교감하는 찰나의 미학을 펼쳐 보인다.

첫 연의 “나는 이미 눈을 감고 있었지요”라는 고백은 감각의 주도권을 시각에서 향기로 옮기며, 감성의 주파수를 후각과 감촉으로 전환시키는 미적 전략이 돋보인다.
“한 송이 피어오른 붉은 장미여”라는 절창은 대상이 단순한 꽃을 넘어서, 삶의 모든 정념과 아름다움을 응축한 상징으로 승화되는 순간이다. 시인의 미의식은 ‘보는’ 사랑이 아닌 ‘느끼는’ 사랑, 외부가 아닌 내면의 피어남을 향해 있다.

특히 압권 壓卷이라 평할 대목은 “그 사랑은 천천히 그러나 깊게 / 피우듯 들이마시듯 / 우리 서로의 중심을 향해 / 꽃처럼 조용히 열리고 있었지요”이다.
이 네 줄은 사랑의 속도와 깊이를 동시에 포착하면서, 인간 내면에 조용히 번지는 연정의 본질을 문학적 메타포로 완벽하게 끌어올렸다. ‘피우듯 들이마시듯’이라는 동사의 병렬은 꽃과 호흡이라는 이질적 질감을 연결하며, 생명과 사랑을 동시에 호명한다. 사랑이란 결국 ‘향기처럼 들이마시는 것’이라는 고도의 철학이 이 구절에 내재한다.

또한 “달빛조차 부끄러워 숨은 사이 / 그대와 나 숨죽이며 피어난 / 단 하나 계절의 여왕 장미여”에서는 사랑을 목격하는 자연조차 숨죽인다는 설정이 사랑의 신성성을 고양시키는 장치로 기능한다. 이 장미는 단지 꽃이 아니라, 감정의 극점이며, 시간의 절정이자 존재의 발화점이다.

황성구 시인의 시 세계는 소란스러운 고백이 아닌, 낮고 조용한 내면의 속삭임으로 완성된다. 언어는 절제되었으되, 그 침묵 속의 밀도는 오히려 더욱 농밀濃密하다.
삶을 꽃처럼 피워내려는 그의 시학은, '말하지 않아도 알았던' 연인처럼 독자에게도 무언의 공명共鳴을 일으킨다.

『붉은 장미 곁에서』는 장미라는 전통적 소재를 시인의 고유한 미감으로 탈바꿈시킨 작품이다. 이 시는 단지 사랑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이란 존재의 떨림 그 자체임을, 그 섬세한 감각이야말로 진정한 생의 메타포임을 일깨워주는 고귀한 시적 결실이다.



ㅡ 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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