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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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학衒學의 그림자와 지성의 실종
― 유시민 작가의 ‘내재적 접근 방법’ 에 대하여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최근 유시민 작가가 김문수 후보의 아내 설난영 여사에 대해 발언한 내용이 공적 발언의 한계를 넘었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여성에 대한 몰지각한 폄훼는 물론, 인간에 대한 예의와 존중을 결여한 표현들이 공론장에서 쏟아졌고, 이로 인해 다수의 시민들로부터 비난을 받게 되자 유 작가는 이를 “내재적 접근 방법”이라는 말로 해명하였다. 이는 마치 문학적 용어의 권위를 빌려 논란을 모면하려는 ‘현학적 방어’에 불과하다.
먼저 “내재적 접근 방법”이란 문학비평이나 예술비평에서 흔히 사용하는 용어로, 외부적 조건이나 작가의 생애, 사회적 맥락 등을 배제하고, 텍스트 내부에만 집중해 의미를 파악하려는 접근법이다. 시적 언어나 작품의 구성, 상징, 이미지 등을 텍스트 자체의 구조와 맥락 안에서 해석하는 방식이다. 이는 뉴크리티시즘(New Criticism)의 영향을 받아 발전한 개념으로, 그 의도는 분석 대상의 외부 요인에 흔들리지 않고 ‘내부의 논리와 의미망’에 충실하려는 데 있다.
허나 유시민 작가가 이 개념을 자신의 ‘논란성 발언’에 적용한 것은 극히 부적절하고, 개념을 왜곡한 일종의 견강부회(牽强附會)에 가깝다. 문학비평의 방법론을 인간의 인격에 대한 공적 발언에 끌어다 붙이는 것은, 개념의 오용을 넘어서 개념에 대한 무지마저 드러낸다. 타인의 인격을 대상화하거나, 그 배경을 사적으로 재단하는 것이 내재적 접근이라 말하는 순간, 그는 ‘비평가적 태도’와 ‘인격적 예의’를 동일선상에 놓아 혼동한 셈이다.
유 작가는 오랫동안 대중에게 ‘합리적 지성인’의 상징처럼 인식되어 왔고, 그의 말은 수많은 이들에게 영향을 미쳐왔다. 그가 말과 글을 통해 전하고자 했던 ‘이성적 민주주의’나 ‘비판적 사유’는, 그 자체로 의미 있고 힘 있는 개념이었다. 그러나 이번 사안에서 그가 보인 태도는 지성의 빛이 아니라, 자칫 오만한 태도로 오인 받을 수 있다.
사과는 진심에서 비롯되어야 하며, 논리적 방패로 감싸선 안 된다. “내재적 접근 방법”이라는 표현은 이 사안과 무관할 뿐 아니라, 그 안에 진정한 반성이나 타인에 대한 존중이 깃들지 않았기에, 오히려 ‘사과의 언어’가 아닌 ‘자기 보호의 장치’로 읽힐 뿐이다. 이는 이른바 ‘지식인의 타락’의 전형이기도 하다.
진정한 지성은 자기 발언의 무게를 알고, 그로 인해 누군가가 상처받았을 때 그 책임을 회피하지 않는다. 지성은 때로 침묵으로 말하고, 때로 진솔한 말 한마디로 스스로를 낮춘다. 고도의 문학 개념을 가져와 방패 삼는 언변은, 말의 윤리를 지키려는 이 시대의 지성인들에게 커다란 상실감을 안긴다.
유시민 작가에게 기대한 것은 학자의 박식함이 아니라, 사유의 깊이와 태도의 성숙이었다. 그러나 이번 일은 단순한 말실수가 아니라, 인식의 단면을 드러낸 사건으로 남게 되었다. 말은 곧 사람이다. 지성인은 언어의 명철함으로 존경을 얻기도 하지만, 언어의 무례함으로 한순간에 신뢰를 잃기도 한다.
결국, 유 작가가 선택해야 할 것은 다시 ‘말을 세우는 일’이 아니라, ‘침묵 속의 성찰’이다. 말 많은 시대일수록, 고요한 책임감이 더욱 값지다. 그리고 그 고요함 속에서, 진짜 지성은 다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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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은 사람의 집이며, 그 집의 창문은 곧 그 사람의 지성이다. 빛이 들어오고 바람이 스치는 그 언어의 틈새를 통해 우리는 그 사람의 세계와 품격을 엿본다. 유시민 작가 또한 그동안 단단하고 정제된 언어의 집을 지어왔고, 그 안에서 수많은 사람들에게 이성과 통찰의 불빛을 나누어준 인물이다.
그러나 집이 아무리 단단하다 해도, 그 집을 지탱하는 기둥이 되는 것은 말의 윤리요, 마음의 온기다. 한때 불 밝히던 그 창이 일시적 안개로 흐려졌다고 하여, 그 사람의 전부를 가려버릴 수는 없다. 실수는 인간의 몫이며, 성찰은 지성인의 책임이다.
유시민 작가가 언어의 *어름 위에서 다시 한 번 자신을 바라보고, 사유의 문지방에 고요히 앉아 스스로에게 묻는 시간을 갖는다면, 그로부터 피어날 또 다른 언어는 이전보다 더 단단하고 더 따뜻할 것이다. 논변의 칼끝이 아니라, 이해의 물결로 사람을 감싸는 그 지성의 힘을, 우리는 아직 믿고자 한다.
그가 지성의 숲을 지나 다시 언어의 강을 건널 때, 잎새보다 부드러운 언어로 사람들을 감싸 안고, 바람보다 깊은 통찰로 시대를 매만지길 바란다. 지금은 말보다 침묵이 더 강한 설득이 될 수 있다는 것, 그 또한 깊이 아는 이이기에. 진정한 지성은 언제나 되돌아와, 침묵 위에 새로운 문장을 다시 쓰는 법이다.
* 어름 ㅡ 두 사물의 경계
ㅡ 청람 김왕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