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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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이라는 이름의 향기
ㅡ 홍승표 선생님을 기억하며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청량한 산기슭,
곤지암 깊숙한 그곳.
마치 마음 한켠이
조용히 정화되는 듯한 공간이었다.
정갈한 바람이 숲을 스치듯 불어오고,
나뭇잎의 속삭임마저 예의 바르게 들려오는 버드나무가 드리우는 곳.
그곳에서 우리는 한 사람,
아니 한 부부를 만났다.
백옥같이 희고
빳빳한 셔츠의 주름 한 자락조차
흐트러짐 없이 단정했던 분.
단지 겉모습 때문이 아니었다.
홍승표 선생님은 그 자체로 한 편의 문학이었고,
그 삶은 정갈한 문장의 행간처럼
깊고 담백했다.
맑은 눈동자에는 혼탁한 세월을 겪고도 흐려지지 않은 고결한 시선이 깃들어 있었다. 그 눈은 사람을 꿰뚫되, 아프게 하진 않았다. 그의 피부는 연륜 속에서도 여전히 투명한 생기와 건강함을 품고 있었고, 단정한 감색 슈트는 외모를 넘어서, 삶의 균형을 상징하듯 고요하게 빛났다. 그의 마음은 무엇보다 따뜻했다. 적요한 시간 속에서 피어난 낭만처럼, 격식 뒤에 숨어 있던 온기가 천천히 번져왔다. 그런 분이기에, 공직의 말단에서부터 꼭대기까지 오르며도 한 점 흐트러짐 없이, 사람냄새나는 향기를 잃지 않을 수 있었을 것이다.
곁에 계신 사모님 역시 마찬가지였다. 정갈한 옷매무새는 단순한 외적 단장을 넘어, 그분의 정숙함과 절제의 미덕을 대변했다. 말없이 웃으시는 눈길 하나에도, 남편의 길을 묵묵히 밝혀온 내조자의 깊은 품성이 스며 있었다. 인생의 부부가 서로를 어떻게 견디고 지지해 왔는지를, 그 자리에서 우리는 묵묵히 배웠다. 말이 아니라 존재로, 그리고 정성으로 말이다.
식사 자리는 단순한 중찬이 아니었다. 그것은 정성의 정원이었다. 한 접시, 한 그릇마다 마음이 담겨 있었고, 담소는 물처럼 흘렀다. 두 시간 남짓의 시간은 마치 짧은 계절처럼 느껴졌고, 우리 부부는 어느 순간, 고요한 잔잔함 속에서 서로를 바라보며 웃었다. 그러나 작별의 순간, 그 조용한 충만함은 예기치 못한 감동으로 바뀌었다. 과일, 와인, 케이크… 손에 들려진 보따리는 단순한 선물이 아니었다. 그것은 한 시대를 정직하게 살아낸 부부가 후배에게 전하는 따뜻한 품격이었고, 친정어머니가 건네주듯 무심한 듯 절절한 마음이었다.
차창 너머로 산 그림자가 기울고, 도심의 불빛이 하나둘 켜지는 동안, 우리 부부는 긴 시간 말이 없었다. 침묵은 더없이 진한 언어였다. 홍승표 선생님의 삶이 그러하듯, 번지르르한 말보다 조용한 진심이 훨씬 더 오래 가슴에 남는 법이었다. 그날의 정성은 어느 향수처럼 우리 삶의 옷자락에 오래도록 배어 있었다.
그분의 삶은 ‘향기’였다. 맡으려 하지 않아도 문득 풍겨오는, 그러나 결코 휘발되지 않는 향기. 그것은 겸손한 품위였고, 절제된 낭만이었으며, 정성이라는 또 하나의 문명이었다. 이제 우리도 그 향기를 따라, 더 곱고 더 따뜻한 어른이 되어가야 할 것이다. 언젠가 또 누군가에게 정성의 보따리를 조용히 건넬 수 있도록. 그날처럼.
ㅡ 청람 김왕식
□ 홍승표 선생님
□ 홍승표 작가
경기도 광주에서 태어났다. 어릴 때부터 아름다움과 싱그러 움 속에서 살다 보니 심성이 따뜻하고 넉넉하다. 자연 친화는 감성을 자극해 펜을 들게 했다. '경인일보 신춘문예'(1988 년) 당선, 한국시조 신인상'을 수상했고 그동안 6권의 책을 펴냈는데 시집 <꽃비>는 '현대시조 100 인선', 수필집 <꽃길에 서다)는 '세종도서'에 선정됐다. 현재 '한국문인협회'와 한국 시조시인협회' 회원이다. 또, 언론사 객원논설위원이자 자유기고가로서도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공무원이 평생 직업이었고 40년을 공직자로 살았다. 공직사 회의 본보기, 공무원들의 만형 같은 도우미이자 전설로 정평 이 나있다. '2010 다산청렴봉사대상', '2013 경기도를 빛낸 영웅', '2014 홍조근정훈장' 등 수상 경력도 화려하다. 인사 행정전문가로도 유명했다. 2년 6개월간 전국지방공무원을 대표해 '공무원 직종개편 6인 소위원회 위원'으로 활약했고 이 공로를 인정받아 '전국광역자치단체공무원 노동조합 연 맹'으로부터 감사패를 받았다. 이웃 돕기에도 앞장섰다. 2019년 '어린이재단 초록우산 명예의 전당'에 헌액됐고, 2020년 '대한적십자사 회원 유 공장(금장)' 등을 받았다. 공무원 명예퇴직 후, 3년간 경기관 광공사 사장으로 일했다. 소통과 감성경영을 통해 적자였던 이 회사를 3년 연속 흑자로 바꿨다. 관광업계와 공동협의체 운영, 합동 국외 마케팅 활동 등의 '함께'가 이룬 성과였다. 2015 한국문화관광산업대전 관광부문 대상', '2016 국민권 익위원회 공공기관 청렴도 평가 공사부문 내부만족도 전국 1위', '2017 코리아 혁신대상' 등이 뒤따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