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숙희 시인의 「멧새야 안녕」을 읽고

김왕식








멧새야 안녕




시인 유숙희




털북숭이 아기 새
두 마리가 뜰 한쪽에서
작은 소리로 울고 있었다.

세상에 나와
고난을 겪는 생명이
어디, 너뿐이겠냐만은,
내 집에 들어와
눈에 띄었으니, 귀한 인연

이리저리, 얼키설키
철사로 손바느질하듯
완성한 집,
보금자리에 들어간
아기 멧새,

며칠 지나 부쩍 자란
새의 본능, 날갯짓에
새장 문을 열어주었다
자유롭게, 넓은 세상으로
날아라 사랑스러운 멧새야.






작은 생명에게 건네는 날갯짓의 시
— 유숙희 시인의 「멧새야 안녕」을 읽고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한 편의 시가 독자의 가슴에 남기고 가는 것은 단지 감상이 아니다. 그것은 존재의 어떤 윤리이며, 생명을 대하는 태도의 문학적 선언일 수 있다. 유숙희 시인의 「멧새야 안녕」은 바로 그런 시다. 아기 멧새 한 쌍을 향한 따뜻한 시선 속에, 인간과 생명, 그리고 자유에 대한 시인의 사유가 섬세하고도 깊게 배어 있다.

시의 첫 연, “털북숭이 아기 새 / 두 마리가 뜰 한쪽에서 / 작은 소리로 울고 있었다”는 구절은 마치 삶의 낯선 문턱에 선 존재들의 떨림을 은유한다. 그것은 단지 새가 아니라, 세상이라는 광야에 첫발을 디딘 모든 약한 생명들에 대한 상징이다. 그리고 이 작은 생명을 시인은 ‘귀한 인연’이라 부른다. 그것은 자연의 일부가 아니라, 시인의 세계에 들어온 하나의 우주이며, 문학의 품 안으로 들어온 고결한 존재임을 뜻한다.

“이리저리, 얼키설키 / 철사로 손바느질하듯 / 완성한 집”이라는 표현은 단순한 둥지의 묘사를 넘어, 인간의 정성 어린 돌봄과 창조의 행위를 상징한다. 철사라는 차가운 물질을 ‘손바느질’이라는 따뜻한 행위로 바꾸는 이 역설적 이미지 안에는, 시인의 손끝에서 삶이, 그리고 사랑이 시작되고 있다는 문학적 변주가 숨어 있다.

이 시의 압권은 마지막 연에 있다.
“새의 본능, 날갯짓에 / 새장 문을 열어주었다 / 자유롭게, 넓은 세상으로 / 날아라 사랑스러운 멧새야.” 여기서 시인은 사랑의 본질을 ‘소유가 아닌 자유의 허용’으로 해석한다. 그것은 단지 새를 놓아주는 장면이 아니라, 부모가 자식을 세상으로 떠나보내는 순간이며, 인간이 집착을 내려놓고 자연의 질서를 존중하는 태도다. 결국 시인이 새장 문을 여는 순간, 독자의 마음에도 또 하나의 문이 열린다. 그것은 생명을 향한 예의의 문이며, 진정한 관계의 시작이기도 하다.

이 시는 짧지만, 품고 있는 사유는 결코 짧지 않다. 생명을 품고, 기르고, 놓아주는 일련의 행위 속에 인간 존재의 근본 윤리가 녹아 있다. 유숙희 시인은 단순히 새 이야기를 한 것이 아니라, 존재를 사랑하는 문학의 자세를 조용히 일깨우고 있다. 그리하여 이 시는 한 마리 멧새의 날갯짓이 아니라, 삶과 사랑, 자유에 대한 깊은 울림의 메타포로 오래도록 독자의 마음을 날아다닌다.

사랑이란 붙잡는 것이 아니라, 날아가게 하는 일이다. 시인은 그 진실을 한 편의 시로, 하나의 날갯짓으로, 우리에게 조용히 들려주었다.



ㅡ 청람 김왕식




□ 유숙희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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