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혼곡(鎭魂曲)의 울림, 오늘 그 이름으로

김왕식







진혼곡(鎭魂曲)의 울림, 오늘 그 이름으로
― 현충일에 충혼을 기리며, 그 숭고한 질문 앞에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진혼곡은 죽은 자를 위한 음악이지만, 실은 살아 있는 자의 영혼을 일깨우는 노래다. 미국 남북전쟁이 한창이던 1860년대, 전쟁터 한복판에서 들리던 진혼곡은 피비린내 가득한 현실에서 잠시 하늘을 올려다보게 했다. 북군의 한 젊은 군악병이 피아노도, 오르간도 없이 호루라기와 트럼펫으로 죽은 동료를 위로하던 장면은 지금도 전해진다. 병사들은 단지 조국의 명령으로가 아니라, 이름 모를 ‘의미’를 위해 전장에 섰다. 그러기에 진혼곡은 무덤보다 먼저, 그들의 가슴에 울렸다.

전쟁은 죽음을 낳지만, 죽음은 곧 인간의 얼굴을 보여준다. 이름 모를 병사가 마지막으로 남긴 메모엔 이렇게 적혀 있었다. “나는 내 목숨을 국가에 바친 것이 아니다. 나의 어머니가 아들을 자랑스럽게 기억할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진혼곡이란 바로 이처럼, 죽음을 무겁게 받아들인 자들의 기도이며 사랑의 선율이었다.

오늘, 대한민국의 하늘 아래서 우리는 다시 그 진혼곡을 듣는다. 현충일, 6월 6일. 이 날은 단지 공휴일이 아니라, '국가를 위해 쓰러진 이들을 기억하는 날'이다. 가슴속 깊은 곳에서 하나의 질문이 일어난다. “나는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칠 수 있는가?”

그 물음은 결코 가볍지 않다. 인간은 누구나 자기 목숨을 사랑한다. 쉽게 바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도 어떤 이들은 그렇게 했다. 그것은 단순한 용기가 아니었다. 사랑 때문이었다. 가족을, 나라를, 다음 세대를 사랑했기에 그들은 주저하지 않았다. 우리는 그 사랑의 결정을 진혼곡으로 부른다.

이제 살아남은 자들이 그 노래를 이어가야 한다. 국립묘지의 흙 한 줌에도, 태극기로 덮인 관 속에도, 조용한 위패의 이름에도 그 노래는 묻혀 있다. 죽음은 지나간 사건이 아니라, 계속 이어지는 책임이다.

나는 생각해 본다. 만약 내가 전장에 있었고, 포로가 되어 있었고, 마지막 선택 앞에 서 있었다면. 과연 나는 ‘조국’을 위해 기꺼이 눈을 감을 수 있었을까? 그 답은 쉽게 말할 수 없다. 아무도 장담하지 못한다.

그러나 한 가지는 분명하다. 나 역시 지금 이 삶을 통해 조국을 지켜야 한다. 전쟁은 총칼로만 이루어지지 않는다. 오늘의 전쟁은 거짓과 무관심, 이기심과 무책임과 싸우는 전쟁이다. 진혼곡은 죽음을 위한 곡이 아니라, 바로 이 싸움을 살아내는 우리에게 건네는 맹세다.

진혼곡은 이제, 후렴구를 기다린다. 그 멜로디는 울림을 타고 우리의 하루로 스며들어야 한다. 아이들을 올곧게 키우는 손길, 진실을 말하는 언론인, 묵묵히 땀 흘리는 노동자, 그리고 나라를 지키는 군인까지. 모두가 진혼곡의 한 소절이어야 한다.

지금 이 순간, 어떤 병사는 고요한 땅속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기억해 달라”는 말도 없이, “바르게 살아 달라”는 유언도 없이, 그저 조용히 누워 있다. 우리는 그 앞에 부끄럽지 않아야 한다.

진혼곡은 멈추지 않는다. 그 노래는 오늘도 살아 있는 자들의 귀를 두드린다. 그리고 이렇게 묻는다.

“너는 살아 있는가. 그리고, 바르게 살고 있는가.”

국립묘지의 하얀 국화처럼, 조용하되 굳건한 책임으로 우리는 오늘을 살아가야 한다. 진혼곡은 울렸다. 이제는 우리가 그 끝자락을 이어가야 할 시간이다.

지금, 우리가 바로 그 후렴이다.



ㅡ 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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