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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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유, 가장 고요한 진실이 가장 단단한 벽을 무너뜨린다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온유는 소리 없는 진실이다. 바람이 꽃잎을 흔들 때 아무 소리 나지 않지만, 그 떨림 하나가 계절을 바꾸듯, 온유는 격동의 세상 속에서도 고요히 사람의 마음을 뒤흔든다. 그 힘은 비명이 아니고, 강철이 아니다. 눈물로 씻은 듯 맑고, 숨결처럼 가볍지만, 그것은 끝내 모든 것을 꿰뚫고 스며드는 침묵의 용기다.
온유는 메아리 없는 산에서 스스로 울림이 되는 존재다. 세상이 칼을 뽑을 때, 그는 두 손을 모아 등을 보인다. 그러나 그 등이야말로 수많은 이들이 기대어 쉴 수 있는 바위의 품이다. 강한 것이 이기는 것처럼 보이는 이 시대에, 진정 이기는 자는 오히려 상처 앞에서 무릎 꿇을 줄 아는 자다.
온유는 꽃보다 가볍지만, 겨울보다 무겁다. 그것은 햇살처럼 내려앉아 얼음 같은 마음을 녹이고, 말 한마디 없이 상처를 닦는다. 그 연약함 속에 깃든 강인함은, 수백 마디의 외침보다 깊은 울림을 지닌다.
문명은 온유함에 의해 성장했고, 사랑은 그 위에서 피어났다. 물은 낮은 곳으로 흐르기에 길을 내고, 바람은 굽은 길을 따라 흐르기에 끝내 구름을 품는다. 나무는 거세게 흔들릴수록 더 깊이 뿌리내리고, 연한 잎은 태풍에도 살아남는다. 온유함은 모든 것의 본질이다.
누군가 말했다. 강한 자가 이기는 것이 아니라, 살아남는 자가 강한 자라고. 그러나 나는 믿는다. 끝까지 품은 자가 이긴다고. 자신을 꺾어서라도 타인을 살리고자 했던 한 사람, 그 온유한 존재가 진짜 세상을 바꾸었다고.
예컨대 한 어린양이 도살장으로 끌려가면서도 입을 열지 않았다. 울부짖지 않았고, 분노하지도 않았다. 그것은 무기력의 표식이 아니라, 절대적인 신뢰의 증명이었으며, 세상의 칼날을 이겨내는 가장 숭고한 방식이었다. 그의 침묵은 메아리처럼 오늘의 우리 가슴에 남아 있다.
온유는 무력함이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모든 것을 견디는 힘이며, 복수를 버리고도 빛을 택할 수 있는 고귀한 선택이다. 온유는 나를 주장하지 않되, 나를 잃지 않으며, 고통 앞에서 눈물짓되, 약해지지 않는다.
사람은 고통을 받을 때 온유를 배우고, 누군가를 진정으로 사랑할 때 온유해진다. 그러므로 온유란, 고통과 사랑이 결합된 영혼의 빛깔이다.
이제 거울 앞에 서자.
나는 지금 온유한가?
내 말은 칼날이었는가, 아니면 바람이었는가?
내 침묵은 도피였는가, 혹은 이해였는가?
나는 이 빠르고 거친 세상에서 여전히 사람을 다정하게 바라보고 있는가?
온유는 외치지 않는다. 하지만 그 향기는 오래간다. 격한 시대일수록 온유한 자의 발자국은 깊이 남는다.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물방울은 바위를 뚫고, 고요한 손길 하나가 상처를 치유하며, 그 무엇보다 조용한 사랑이 삶을 지탱한다는 것을.
이 시대에 진정 필요한 것은 더 많은 말이 아니라, 더 깊은 온유다. 그리고 그 온유는 지금 이 순간,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의 가슴에서 시작될 수 있다.
가장 부드러운 것이, 가장 단단한 것을 꺾는다.
가장 고요한 자가, 결국 가장 멀리 간다.
온유, 그것은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방식으로 사람을 껴안는 힘이다.
ㅡ 청람 김왕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