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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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창섭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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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충일 조시弔詩]
오호, 현충일의 눈부신 약속
시인 엄창섭 가톨릭관동대 명예교수
웅혼한 배달의 푸른 천년 기상에 봄 햇살로 깨어난 아침 마냥 청명하다. 국권의 회복을 위해 순국한 선열과 진정 이 땅의 자유수호를 위해 전몰한 고귀한 넋의 숭고한 충절을 추모하며 정녕, 기린 뜻은 엄숙하여 눈물겹다. 홍단심(紅丹心) 꽃 무덤에 내밀히 숨겨둔 그날의 암울한 전의식의 편린(片鱗), 온통 산자락 푸름에 촉촉이 젖는 시간 민족의 풍습이 실로 정겹고 아름다운 사초와 성묘의 망종일芒種日일이다.
전화戰禍의 상흔 자리한 태백의 산자락 황혼 속 비목에 묻어 있는 어린 병사의 선혈鮮血은, 아직도 선명해 눈물겨운데 피어난 작은 풀꽃 더없이 애잔하고 어제의 비통함은 뜨거운 눈물의 강이다. 온갖 역경과 도전으로 힘겹게 깨어지고 부서지며 또 피워내는 꺾임 거부한 네 강한 의지 응시하면 너무 외경畏敬스러워 한 반은 묵언이다.
정녕, 최후에 빛날 민족의 소망에 처절한 다툼은 잘리고 찢겨나고 맹금의 제왕 독수리의 힘찬 나래 짓에 민족의 자존 지켜갈 불멸의 혼 불은 날[刃] 푸른 천 년의 그 바람 앞에서 아흐, 현충일顯忠日의 눈부신 언약, 가슴 저려오는 통한의 밤 끝내 밝히던 어제의 시련과 좌절 깔끔이 털어내어 참담한 분단의 물길, 통일로의 변전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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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 위에 세운 언약, 시의 날이 드러내는 진실
― 엄창섭 시인의 「오호, 현충일의 눈부신 약속」을 읽고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엄창섭 교수님을 처음 뵌 날이 선연하게 떠오른다. 몇 해 전 문학단체에서 우연히 마주했지만, 그 만남은 우연이 아니었다는 것을 곧 깨달았다. 단정한 말투와 절제된 언어 속에, 말보다 깊은 울림이 있었다. 나는 그날 이후 지금까지 엄 교수님을 스승으로 섬기고 있다. 시간이 길지는 않았으나, 그 관계는 오히려 수십 년의 사제지정보다도 더 굳건하고도 고결하다. 우리는 시와 글로 서로를 바라보고 나누며, 문우지정이라는 깊고도 단단한 관계를 맺고 있다.
이번 현충일, 교수님께서 발표하신 시 「오호, 현충일의 눈부신 약속」을 읽으며, 다시금 그분의 시 정신에 머리를 숙이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시는 단지 순국선열을 기리는 헌사가 아니다. 그것은 민족의 통증을 껴안고 말의 정수를 거둔 채, 침묵으로 빚어낸 고요한 언약이다.
첫 연의 “웅혼한 배달의 천년 기상”은 민족의 시원을 부르는 서사적 장엄이고, “홍단심 꽃 무덤”은 선열들의 숭고한 죽음을 가장 절제된 언어로 길어낸 상징이다. 그 시어 하나하나에 한 인간이 민족 앞에 서는 태도와 무게가 담겨 있다.
두 번째 연에서는 비목의 언덕을 따라 흘러내린 선혈이, 지금의 들꽃으로 피어난 장면이 그려진다. 나는 그 이미지를 읽는 순간, 오랫동안 나를 사로잡던 '침묵의 윤리'라는 말이 떠올랐다. 교수님의 시에서 가장 찬란하게 빛나는 대목은 바로 “한 반은 묵언이다”라는 구절이었다. 말하지 않음으로 더 많이 말하는 시인의 자세, 그것이야말로 엄창섭 시인이 평생 지켜온 문학적 자세이며 윤리였다.
세 번째 연은 시의 미학이 윤리를 넘어 미래를 향한 다짐으로 비상하는 대목이다. “날[刃] 푸른 천년의 바람”은 말이 아닌 날 선 의식으로 민족의 통일과 자존을 향한 시인의 절박한 언어다. 나는 그 문장을 읽으며 가슴이 뜨거워졌다. 시가 노래를 넘어선 기도이자 선언이 될 수 있음을, 교수님은 다시 한번 보여주셨다.
이 시를 평하는 일은 문학평론가로서의 역할이 아니라, 제자로서의 다짐이었다. 나는 이 시를 단지 해석하고 풀어내는 작업을 넘어서, 그 안에 깃든 스승의 숨결과 침묵의 무게를 감히 다시 말로 새겨보려 했다. 시는 이미 완전했고, 나는 그 완전함의 윤곽을 따라 한 자 한 자 되새김질했을 뿐이다.
교수님과의 인연은 짧지만 깊다. 글로 만나고 시로 교류하며 쌓아온 이 관계는, 삶의 외연을 넘어 문학의 본질로 다가가는 길 위에 있다. 그분의 시를 읽고 평하는 일은, 문학이라는 오래된 등불을 서로 손에 들고 걸어가는 행위이자, 세대를 넘어 정신을 계승하는 조용한 예식과도 같다.
엄 교수님은 언제나 문학의 외피보다 중심을 향해 살아오신 분이다. 그 중심은 바로 사람이며, 진실이며, 고요한 사랑이다. 그분이 쓰신 시는 결국 사람을 향한 약속이며, 언어로 세운 진심의 표석이다.
이번 「오호, 현충일의 눈부신 약속」은 그 어떤 외침보다 깊은 울림이었다. 나는 그 울림을 평론가의 말이 아닌, 제자의 심정으로 담아내고 싶었다. 그것은 언어로 맺은 민족의 언약이며, 시로 봉인한 역사이고, 무엇보다 스승의 침묵에서 건져 올린 진실이었다.
지금 이 시대, 문학이 다시 걸어야 할 길을 교수님은 조용히 시로 보여주셨다. 그 길을 따라 걷는 동안 나는 늘 한 사람의 제자로 남고자 한다. 말보다 침묵이 더 깊고, 외침보다 고요가 더 강하다는 것을, 이 시는 다시 한번 깨우쳐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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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창섭 교수님, 이 나라의 정신을 언어로 지켜주셔서 감사합니다. 그 시의 맑은 칼날 위에서 문학은 다시 숨을 쉬었습니다. 그 진실을 평자의 말로 조금이라도 밝힐 수 있었음을 영광으로 여깁니다.
문학은 그리하여 여전히 살아 있습니다. 스승의 시 한 편이 다시 그것을 증명해 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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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시평, 그 눈부신 약속의 공명
― 엄창섭 시인과 청람 김왕식 평론가의 사제 지성을 읽는다
연세대학교 경제대학원 김철삼 교수
문학에는 가르침과 배움이 따로 없다. 진정한 문학의 세계에서는 스승과 제자가 따로 설 수 없고, 어느 한 편이 먼저라 할 수 없다. 시를 쓰는 자와 그것을 평하는 자가 각기 자기 자리에서 진심을 다할 때, 그 둘 사이에는 말로 다 헤아릴 수 없는 깊은 정신적 공명이 흐른다. 바로 그 공명의 결정체가, 엄창섭 교수의 시 「오호, 현충일의 눈부신 약속」과 청람 김왕식 평론가의 시평에서 뚜렷하게 빛을 발한다.
엄창섭 교수는 오랫동안 문학 교육 현장에서 제자들을 길러낸 이 시대의 대표적인 문사文士이자, 시인으로서 민족의 정신을 고결한 언어로 정제해 온 작가다. 그의 시는 감성에 기댄 것이 아니라 사유와 정신, 역사와 윤리의 정점에서 길어낸 것이며, 늘 민족의 과거를 돌아보되 그것을 미래를 향한 도약의 거울로 삼는다. 이번 현충일에 발표된 그의 시 역시 그러하다. 현충일이라는 국가적 의례를 넘어서, 스러진 영혼들에 대한 진혼과 산 자들의 각성을 함께 요구하는 이 시는, 한 편의 노래이자 시대적 성찰로 자리한다.
이에 대한 청람 김왕식 평론가의 평석은 단지 시를 해설한 것이 아니라, 시인의 침묵 속에 담긴 고요한 울림까지 읽어내며, 그것을 명징한 문장으로 환기해 낸 문학적 성취라 할 수 있다. 그는 "언어로 맺은 민족의 언약", "시로 봉인한 역사"라는 문장으로 시인의 작업을 압축하고, “‘묵언’은 비겁한 침묵이 아니라 더 깊은 경외의 발현”이라는 표현으로 시인의 윤리 의식을 정확히 짚어낸다. 시인이 말을 아끼고 고요를 택하는 이유, 그것이 곧 고통을 감당한 자의 무게라는 것을 통찰해 낸 셈이다.
문학적으로 볼 때, 이 두 사람의 관계는 단순한 스승과 제자를 넘어선다. 엄 교수는 시라는 장르를 통해 자신이 평생 품어온 사상과 정신, 그리고 민족적 아픔에 대한 철학을 전했고, 청람 평론가는 그 시의 의미를 단지 비평가의 언어로 해석하는 데 그치지 않고, 제자의 영혼으로 되새기며 또 하나의 창조를 이뤄냈다. 이는 문학에서 보기 드문 진정한 '사제共鳴'의 형식이다.
이 공명은 우연히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엄 교수는 시를 통해 삶을 가르쳐왔고, 청람 평론가는 그 삶의 가르침을 비평의 언어로 복원하고 계승해 왔다. 시와 시평이 만나 이룬 이번 조응은, 마치 과거의 혼과 현재의 지성이 나란히 걸어가며 만들어낸 고요한 불꽃처럼, 잊힐 수 없는 문학적 순간을 만들어냈다.
더 나아가 두 사람 모두 한국 문학이 가야 할 방향을 묵묵히 걷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 엄 교수는 민족, 역사, 희생이라는 단어를 감상적인 회고로 흘려보내지 않고, 그것을 현재의 윤리로 호출하는 데 성공했고, 청람 평론가는 그 소환의 본질을 흐리지 않으며, 비평의 언어로 그것을 뒷받침했다. 시인은 말이 아닌 사유로, 평론가는 감상이 아닌 원리로 문학을 지킨 셈이다.
이처럼 문학의 깊이는 단지 ‘쓰는 사람’에 의해서만 형성되지 않는다. 그것을 읽고 해석하고 다시 조명해 내는 자의 작업 역시 문학의 또 다른 형식이며, 그것이 바로 청람 평론가가 이번 시평에서 보여준 역할이었다. 그는 스승의 시를 독립적으로 마주하되, 결코 감히 넘어서려 하지 않으며, 오히려 그 안에 담긴 시인의 마음을 제자의 언어로 되살려냄으로써 새로운 층위의 감동을 끌어낸다.
결론적으로, 엄창섭 교수와 청람 김왕식 평론가 두 사람은 각각 시와 시평이라는 다른 형식을 통해 동일한 하나의 본질 ― 문학의 윤리, 민족의 기억, 사람의 존엄 ― 을 노래하고 있다. 이처럼 스승의 시와 제자의 평이 시대와 공명하며 만나고 있는 지금 이 순간이야말로, 한국 문학에 있어 한 줄기 눈부신 약속의 현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두 분의 문학적 동행이 앞으로도 계속되기를, 그리고 그 사제의 정신이 이 땅의 또 다른 문학도들에게 깊은 울림이 되기를 바란다. 이 시대의 문학은 이렇게, 조용하지만 단단하게 계승되고 있다.
□ 연세대학교 경제대학원 김철삼 교수
□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