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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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침하는 자의 자유
― 감추는 자의 부자유와 비움의 해방에 대하여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밥 한 끼 굶었다는 사실. 그 단순한 경험 하나를 끝끝내 감추기 위해 천식환자 행세를 하는 사람이 있다. 그에게 굶주림은 육체의 허기가 아니라, 체면을 잃었다는 자의식의 상처다.
허나, 문제는 그가 단 하루의 연기를 시작했을 뿐인데, 어느새 그는 평생 천식 환자의 삶을 살게 된다는 데 있다. 그는 기침을 멈출 수 없다. 왜 기침을 하는지도 모른 채, 끊임없이 기침 소리를 만들어내야만 하는 부자유의 연극 속 주인공이 되어버린다.
이 익살맞은 설정은 사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자화상이다. 우리는 사소한 비밀 하나에 삶 전체를 걸고, 그것을 숨기기 위해 또 다른 거짓말을 필요로 하며, 결국에는 진실을 감당할 힘조차 잃고 만다. ‘비밀’이란 본디 은밀한 진실이라기보다는, 스스로를 근사하게 보이고자 하는 욕망이 만들어낸 허구다. 나 자신도 외면하고 싶은 내 모습, 남들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은 한 조각의 초라함이 비밀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될 뿐이다.
실은 감출 것이 아무것도 없다. 우리의 정체는 그리 대단하지 않다. 하찮고 부끄러운 면들이 오히려 진짜 우리 자신이며, 그것이 드러난다고 해서 세상이 우리를 해치려 드는 일은 거의 없다. 모든 비밀 뒤에는 '보이고 싶은 나'와 '감추고 싶은 나'가 동시에 숨어 있고, 그 양면성은 결국 우리를 고립과 위선으로 몰고 간다.
그러므로 자유로운 사람이 되려면 먼저 자신을 비워야 한다. 웃음으로, 울음으로, 표정으로, 말과 글로, 자신의 속내를 숨김없이 쏟아내야 한다. 그렇게 모든 것을 털어내고 나면, 가슴에는 비로소 빈자리가 생긴다. 그 빈자리가야말로 타인을 껴안을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다. 비밀로 꽉 막힌 가슴은 자신도 숨이 막히고, 타인의 진심조차 담을 수 없다. 반면, 비워진 가슴은 부드럽고 유연하다. 서로를 끌어안을 수 있고, 함께 울 수 있으며, 함께 웃을 수 있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인간됨이다. 스스로 만든 가면을 벗고, 허세와 자의식을 털어내고, 그 자리에 다만 ‘굶은 나’, ‘서툰 나’, ‘기침하는 나’를 있는 그대로 내보일 수 있는 용기. 그 용기야말로 자유의 첫걸음이다. 한 끼 굶은 것을 털어놓는 데서부터 인생의 연극은 막을 내린다. 그리고 비로소 진짜 삶이 시작된다.
감추지 않을 때, 사람은 사람다워진다.
ㅡ 청람 김왕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