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왕식
■
채움이란
시인 강문규
곳간을 채우고 채우니
넘치더라
아홉에 열을 채우니
넘치고
아흔아홉에 백을 더하니
넘치고 넘치더라
채움이란
욕심이고
보이지 않는 상처더라
채움이란
여유 없는 불안함이고
바쁘기만 하더라
채움이란
진실과 깨끗한
마음은 멀어지더라
적당히 채우고
적당히 비우니
여유와 편안함이더라
넘치는 채움은
마음과 몸을 상하게 한다
인생은 빈손으로 왔다
빈손으로 가는 것
■
채움의 역설과 비움의 미학
― 강문규 시인의 삶의 가치철학과 시적 미의식에 부쳐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강문규 시인의 시 「채움이란」은 단순한 시어로 시작하여 깊은 인생철학으로 귀결되는 밀도 높은 성찰의 언어이다.
이 작품은 ‘채운다’는 행위를 중심에 두되, 그 이면에 감춰진 인간 내면의 욕망과 불안을 예리하게 파헤친다.
시인은 이 과정을 통해 ‘채움’이 곧 ‘상처’이자 ‘불안’이며, 결국 ‘진실과의 거리두기’로 이어지는 인간 존재의 아이러니를 고요하게 고발한다. 그의 언어는 결코 격렬하지 않지만, 침묵 속에서 울리는 종소리처럼 묵직한 울림을 남긴다.
“곳간을 채우고 채우니 넘치더라”는 시의 출발은 외형의 충만을 노래하는 듯 보이지만, 그것은 곧 내면의 허기와 연결되는 경고로 이어진다.
‘아홉에 열’, ‘아흔아홉에 백’이라는 점층적 수사법은 인간 욕망의 무한 확장을 상징하며, 이 넘침이 결코 충족이 아닌 ‘과잉’의 폐해로 귀결됨을 시인은 알고 있다. 넘친다는 것은 곧 흘러내리고, 그 흐름은 스스로의 자리를 망가뜨린다.
강 시인의 미의식은 바로 이 지점에서 빛을 발한다. 그는 채움의 반대말로 단순한 ‘빈곤’이나 ‘결핍’을 놓지 않는다. 오히려 ‘여유’와 ‘편안함’이라는 충만한 내면 상태로서의 비움을 말한다.
이는 동양적 사유―특히 노자의 ‘무위자연’과 선불교의 ‘공(空)’의 사상과 맞닿아 있다.
채움은 에고의 발작이며, 비움은 성찰의 산물이라는 시인의 철학은 단순한 생활태도를 넘어 존재에 대한 근원적 태도를 묻는다.
그는 시 속에서 일상을 말하면서도 결코 일상에 머물지 않는다. “진실과 깨끗한 마음은 멀어지더라”는 한 구절은, 채움이 진실을 가린다는 윤리적 통찰로 나아가며, 삶의 본질은 언제나 ‘적당한 거리’에서 탄생한다는 미학적 결론으로 이어진다. 그러므로 시인은 외친다. 적당히 채우고 적당히 비우라고. 그 ‘적당함’ 속에 비로소 ‘인생의 균형’이 자리한다.
마지막 두 행, “인생은 빈손으로 왔다 / 빈손으로 가는 것”은 강문규 시인의 시세계를 아우르는 결정적 명제다. 이 문장은 허망한 체념이 아니라, 모든 욕망의 순환을 내려놓은 자가 얻는 자유에 대한 선언이다. 그에게 삶이란 움켜쥐는 것이 아니라, 놓아 보내는 일이며, 끝내 손에 남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일이다.
이 시는 삶을 고요하게 꿰뚫는 철학이 담긴 한 폭의 묵화이며, 격렬하지 않으되 단단한 진실을 품은 연가이다. 강문규 시인은 그만의 절제된 언어로, 독자들에게 ‘비워야 비로소 얻는다’는 역설의 미학을 설득력 있게 건넨다.
요컨대, 이 시는 삶을 채우기보다 삶을 덜어내려는 시인의 의연한 태도, 그 비움 속에서 얻은 깊은 자유의 숨결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ㅡ청람
강문규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