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왕식
□ 유숙희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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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연에 대하여
시인 유숙희
누구나 마음속에는
사람에게 향한 애틋함으로 삶을 수놓아 가꾸는,
그러나, 너무
가까이하면 늪이 되고,
멀리하면 사막이 되는
적당한 거리 유지가 어렵다.
소중하게 지킬 수 있는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그리 쉽지 않으나,
늘 한결같고 진실하다면
어느새 훈훈해지는
온도를 느낀다.
어떤 인연이든
신뢰와 믿음이 없다면
하루아침에 무너지는
모래성과 같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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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숙희 시인의 「인연에 대하여」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유숙희 시인의 시 「인연에 대하여」는 관계의 결을 조용히 어루만지며, 인간 사이의 거리와 온도를 되짚는 사색의 정원이다. 시인은 삶이라는 천 위에 실로 꿰듯 한 줄 한 줄 관계의 본질을 수놓는다. 절제된 언어로 담백하게 그려낸 이 시는, 화려한 감정을 경계하며 진심의 결만을 남긴다. “가까이하면 늪이 되고, 멀리하면 사막이 된다”는 시구는 인간관계의 본질을 한 문장으로 응축한 압권의 표현으로, 관계의 절묘한 균형을 한 폭의 동양화처럼 그려낸다.
시인의 삶은 시 속에 녹아 있다. 그녀는 자신의 존재를 삶의 한 땀 한 땀으로 엮는 장인이다. 외유내강의 품성을 지닌 그녀는 우아한 백조처럼 잔잔한 호수 위를 떠다니되, 그 아래에는 깊은 사유와 자성의 물결이 흐른다. 그녀의 시는 감정의 외침이 아니라 고요한 침묵 속에서 번지는 울림이다. 시의 흐름 속 ‘훈훈해지는 온도’는 감정의 피상적 따뜻함이 아니라, 오랜 신뢰와 진실함에서 우러난 내면의 온기다.
“소중하게 지킬 수 있는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그리 쉽지 않으나”라는 시인의 언표는 인연에 대한 그리움이 아니라, 살아낸 사람만이 품을 수 있는 진실한 체온이다. 그러한 감정은 어떤 장식도 없이 시인의 경험에서 직접 길어 올린 진심의 물결이다.
마지막 연의 “신뢰와 믿음이 없다면 하루아침에 무너지는 모래성과 같더라”는 시구는 인연을 감상적으로 미화하지 않고, 윤리적 긴장을 담은 진지한 삶의 결론이다. 인연은 단지 마음의 흐름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세계의 기초라는 자각이 담겨 있다.
유숙희 시인은 말 많은 시대에 말의 무게를 알고, 침묵의 결을 아는 사람이다. 그녀는 삶을 가볍게 흘려보내지 않는다. 그녀의 시는 ‘어떻게 존재할 것인가’보다 ‘어떻게 함께 존재할 것인가’를 묻는다.
『인연에 대하여』는 단지 관계에 대한 시가 아니다. 그것은 시인의 삶의 방식이자, 인간에 대한 연민과 이해가 만들어낸 시적 윤리다. 유숙희 시인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 틈을 두되, 그 틈이 바람을 품고 빛을 통과시키는 ‘제3의 공간’ 임을 안다.
그런 점에서 이 시는 인간적인 그리움과 존재론적 성찰이 교차하는 삶의 지도이며, 그 위를 조용히 걸어가는 시인의 품격이 오롯이 배어 있는 아름다운 여백이다.
ㅡ 청람 김왕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