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럭 핸들 잡은 손에 펜을 쥐고, 가슴엔 문학의 짐을

김왕식


□ 트럭운전사 자연인 안최호





소양고택을 다녀왔다.


트럭 핸들 잡은 손에 펜을 쥐고, 가슴엔
문학의 짐을 싣고 달리는 사내의 꿈


最浩 안길근



트럭운전사 안최호, 평생 도로 위를 달리며 살아왔다. 생계란 이름으로 짐을 싣고, 가족이란 이름으로 밤길을 달려왔다. 삶이란 어쩌면 무거운 짐을 조금씩 나르는 일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지난 소양고택에서 열린 청람문학회에 참석하고 나서야, 나는 알았다. 마음속 가장 무거운 짐이 '시'였다는 것을.

이틀 치 일을 미뤄두고, 존경하는 하봉도, 이오동, 정해란, 노영선 시인님을 모시고 서울 양재에서 전주 소양고택까지 백 리 길을 달렸다. 짐칸엔 시인을, 가슴엔 설렘을, 운전석엔 문학의 기대를 가득 실었다. 브레이크는 밟아도, 문학에 대한 내 열정에는 제동장치가 없었다.

고택의 뜰을 밟는 순간, 내 마음에도 뭔가 조용히 피어났다. 나처럼 다소 거칠고 투박한 이 몸뚱이로, 과연 이런 자리에 있어도 되는가 싶다가도, 시낭송에 깃든 청아한 울림과 다도香에 스민 조용한 감동은 내 마음의 연료 탱크를 가득 채웠다.

차창 밖 풍경은 그날따라 유난히 시처럼 다가왔고, 후진등의 붉은빛조차 노을처럼 아름다웠다. 짐칸에 실린 단어들이 차곡차곡 문장이 되어가는 느낌, 그게 바로 청람문학촌의 마법이었다.

1회 청람문학상 수상자는 산양 백영호 시인님. 나? 당연히 박수 쳤지. 그러나 한쪽 가슴 어딘가선 소리 없는 외침도 있었다.
“그래도 다음엔 나도 좀 불러주지 않겠어?”

내 시는 원고지 대신 장거리 운전일지 위에 적혀 있다. 고속도로 휴게소, 정차한 갓길, 밤새워 울리던 타이어의 진동 위에 쓰인 시구들이 쌓이고 쌓였다. 등단도, 문단도 모르지만, 삶이 내게 쥐여준 가장 투박한 펜을 놓지 않았다. 오일 묻은 손끝으로 쓴 시가 어쩌면 가장 진실한 언어가 아닐까 싶다.

그날 청람문학촌의 가족들이 내 손을 꼭 잡아주었다. “시인님, 고맙습니다.” 그 한마디에 나는 눈시울을 돌렸다. 이런 대접, 처음이었다. 시인이라니. 이제 나도 문학인이라니. 그 말 한마디가 차디찬 운전석을 온기로 바꿨다.

2회 청람문학상?
아, 그거야 나지.
다음번엔 트럭 짐칸에 시집 한 상자를 실어와, 고택 마당에 턱 내려놓고 말할 테다.
“이번엔 제가 실어왔습니다, 문학의 무게를.”

문학은 고급 다과상이 아니라, 때로는 허기진 한 끼 밥상이어야 한다. 시는 하얀 손끝에서만 태어나는 것이 아니다. 검게 그을린 손바닥 위에서도, 지친 발뒤꿈치 아래서도 피어난다.

나는 진심이다. 익살맞게 말하지만, 마음 깊은 곳엔 시를 향한 절절한 열망이 있다. 누군가 "그게 무슨 시냐?"고 웃을지 몰라도, 나는 안다. 내 시는 바퀴처럼 굴러가며, 이 세상의 뒤안길을 비추는 조명이라는 걸.

청람문학상.
그 이름, 언젠가 트럭 위에서
진짜로 불리고 싶다.
그날, 핸들 대신 펜을 들고
나는 더 먼 문학의 길로
출발할 것이다.


장심리청람루에서
새벽을 깨우며

最浩 안길근







길 위에서 피어난 문학의 증언
― 안길근(最浩) 작가의 글을 읽고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트럭은 달린다. 그 위에는 짐이 실리고, 사람의 하루가 실린다. 그러나 이 글에서 우리는 단순한 ‘운반’ 이상의 것을 목격하게 된다. 바로 삶의 무게와 문학의 꿈을 동시에 실은 한 사내의 아름다운 고백, 안길근(최호) 작가의 에세이 「소양고택을 다녀왔다」는 그 자체로 길 위에서 피어난 한 편의 뜨거운 서사시다.

첫 문장은 이미 이 글의 전부를 함축하고 있다.
“트럭 핸들 잡은 손에 펜을 쥐고, 가슴엔 문학의 짐을 싣고 달리는 사내의 꿈.”
이 문장은 한 줄의 시이고, 한 생의 기도다.

안 작가는 트럭이라는 공간을 단지 생계의 수단으로 보지 않는다. 그는 그 안에서 시를 낚고, 시인을 모시고, 풍경을 읽는다. 짐칸에 실린 시인들, 차창 너머 흐르는 풍경, 후진등의 붉은 불빛까지 그는 모두 시의 재료로 끌어들인다. 이쯤 되면 ‘트럭꾼 시인’이 아니라, ‘도시와 시골, 현실과 문학을 연결하는 사절단’이라 불러야 한다.

그의 문장은 투박하지 않다. 오히려 삶의 현장에서 채취한 문장의 향기가 있다. 문학은 종종 책상 위에서만 자란다고 오해되지만, 안 작가는 몸으로 쓴 시, 진흙에 묻힌 펜, 핸들과 혼용하는 문장을 보여준다. 그는 삶의 타이어를 굴리며, 시의 페달을 밟는다. 그것은 지친 삶을 안고 비탈길을 오르는 진심의 문학이다.

청람문학회 창간 기념행사의 풍경은 그에게 문학의 세례처럼 다가왔다. 시인의 눈빛, 고택의 다도, 조용한 낭송 — 그 모든 감각이 그의 심장을 울렸다. 그러나 그 감동을 고이 간직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는 웃음을 곁들인 의지로 이어낸다.

“2회 청람문학상? 아, 그거야 나지.” 이 말에는 해학이 있고, 꿈이 있고, 감히 손을 들 용기가 있다.

그의 문장은 곳곳에 문학적 메타포로 빛난다. “고급 다과상이 아니라 허기진 밥상”이라는 문장은 문학이란 무엇인가를 정확히 집어낸 표현이다. 배부른 이들의 지식이 아니라, 굶주린 이들의 절박함 속에서 피어난 문장이 더 뜨겁고 더 인간적이라는 것을 그는 본능적으로 알고 있다.

그는 시인이라 불릴 때 눈시울이 뜨거워졌다고 한다. 처음 듣는 그 이름 하나가, 그의 생애의 방향을 틀었다. 아마도 그것은 누군가의 평생을 걸고 쥔 핸들이 처음으로 ‘문학’이라는 목적지를 찍은 순간이었으리라. 그리고 그는 이제, 그 길을 떠나려 한다. 핸들 대신 펜을 쥐고, 더 먼 문학의 고갯길을 향해 엔진을 가열하고 있다.

이 에세이는 누군가에겐 한 편의 유쾌한 수기일 수 있으나, 문학을 아는 이들에겐 ‘삶에서 길어 올린 진실한 문학의 형상’으로 읽힌다. 거기엔 어느 학문도 따라갈 수 없는 구체의 정직함이 있고, 그 정직함을 유머와 해학, 그리고 감동으로 치환하는 능력이 있다.

청람문학상이 단지 시인들 사이의 시상이 아니라, 이런 현장감 있는 생의 고백을 끌어안는 그릇이라면, 이 글은 반드시 그 후보가 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이 글은 시인이 되기 이전에, ‘시가 태어나는 장소’를 증언하기 때문이다.

장심리 청람루에서 새벽을 깨우며 써 내려간 그의 문장은 여전히 달리고 있다. 핸들 끝에서 시작된 펜 끝의 진심, 그 노정은 이제 갓 시동을 걸었다. 앞으로 안길근 작가의 트럭 위에서 더 많은 시들이 싣고 내려올 것을 믿는다. 그 시는 문학의 무게를 넘어, 세상의 울림이 될 것이다.

그는 지금, 단순히 도로를 달리는 것이 아니다.
문학을 향해
정확히 길을 잡았다.



ㅡ 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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