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엽 박경숙 선생과 자운 김윤미 선생의 문학적 동행

김왕식



스승 소엽 박경숙 선생님




제자 자운 김윤미 선생님






찻잔에 담긴 시 한 잎

― 소엽 박경숙과 자운 김윤미의 문학적 동행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청람문학회 창간기념회, 그 고즈넉한 전주 소양고택의 뜰에서 가장 먼저 시가 피어난 자리는 찻상 위였다. 그 자리에 놓인 것은 단순한 다기와 다식이 아니었다. 문학을 향한 깊은 헌신, 사제 간의 정성 어린 동행, 그리고 육신의 고통을 견디며 피워낸 단아한 품격이 한 폭의 수채화처럼 펼쳐져 있었으니, 그 수채화의 이름은 ‘소엽과 자운’이다.

소엽 박경숙 선생은 허리 통증으로 병원에 입원 중이었지만, 대전의 자신의 다실 ‘사발’에서 찻자리를 위한 준비를 무려 7시간이나 진행했다. 그녀에게 병실의 침상보다 청람문학회의 찻상이야말로 더 절실한 무대였다. 조심스레 의사의 눈치를 살피며 다실로 향했고, 마침내 그 헌신이 들통났을 때, 주치의는 미소 띤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선생님은 환자로서 자격이 없습니다.”

그 한마디는 꾸짖음이 아니라 찬사였다. 병을 이겨낸 의지가 아니라, 문학 앞에서 자신을 내어주는 무언의 사랑이었기 때문이다. 모든 준비를 마친 그녀는 다시 병원으로 돌아가야 했지만, 그 자리에 진심을 남겼다.

그 진심을 이어받은 이는 제자 자운 김윤미 선생이었다. 처음으로 홀로 중책을 맡은 자운은, 스승의 정성과 지침을 온전히 품고 소양고택의 뜰 한복판에서 차향을 피워냈다. 수백 년의 숨결이 깃든 마당에서 그녀의 움직임은 마치 말없는 시처럼 정갈했고, 그 섬세한 손끝에서 문학의 품격이 피어났다.

자운은 단지 ‘전수받은 역할’을 수행한 것이 아니었다. 그녀는 스승의 마음을 찻잔 속에 다시 우려내어, 문학을 향한 순결한 의례로 완성시켰다. 그날의 공기조차 그녀의 정성에 물들었고, 찻상 위에는 시보다 더 깊은 침묵의 운율이 감돌았다.

흔히 사제지정(師弟之情)이라 말하지만, 이토록 고결하게 구현된 예는 드물다. 소엽은 ‘몸’으로 준비했고, 자운은 ‘마음’으로 실행했다. 이 두 사람의 고요한 헌신은 문학을 향한 예배였고, 시인의 모임에 시보다 더 시적인 장면을 남겼다.

그날의 찻자리는 단순한 휴식의 공간이 아니었다. 그것은 청람문학회의 정신을 오롯이 담아낸 가장 순수한 형식의 의례였다. 문학은 결국, 마음을 따뜻하게 우려내는 일이기에, 그 찻잔 속에는 수많은 시인들의 정서가 조용히 담겼고, 자운의 손끝을 통해 우리 모두에게 전해졌다.

그들은 무대 위에 오르지 않았지만, 실은 가장 눈부신 중심에 있었다. 말하지 않고도 마음을 전하고, 드러내지 않고도 감동을 주는 사람들. 그런 이들이야말로 문학의 뿌리를 단단히 지키는 이들이다.

소엽의 고통은 무게였지만, 그것은 짐이 아니었다. 그것은 문학을 향한 무언의 기도였고, 자운의 묵묵함은 연습된 겸손이 아니라 진짜 배움을 아는 자만이 지닐 수 있는 우아한 침묵이었다.

그날 소양고택의 찻상 위 꽃은 두 사람의 고아한 모습이다. 그 향은 청람문학에 고스란히 풍겼다.

찻잔 하나에 세월이 들고,
찻상 하나에 정성과 문학의 숨결이 얹혔다.
그 모든 것을 정갈하게 피워낸
소엽과 자운,
두 여인의 고요한 헌신은
그날의 문학을 향기롭게 완성시켰다.

문학이 반드시 시로만 존재하란 법은 없다.
그날 우리는 찻자리에서
가장 향기로운 한 편의 시를
조용히, 그러나 깊이 마셨다.

ㅡ 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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