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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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아, 괜찮아
시인 황옥례
요즈음 무엇을 위해 살고 있는지 씁쓸한 여주 차를 마시며
내가 나에게 묻는다
주말이면 핸드폰 벨도 휴가 중 찾아온다고 약속한 사람 없지만
혹시 현관 소리에 귀 기울인다
붉게 물든 저녁노을
영산홍 꽃 빛깔도 찹 고운데
함께 즐길 사람 떠났으니
그 사람 더욱 그리워진다
홀로 의자에 앉아
하늘을 날고 있는 구름 떼를 보며 무한한 자유가 숙성된다
홀로 남는다는 것은
지독히 슬프고 외롭지만
괜찮아, 괜찮아
내가 나를 위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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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아, 괜찮아’
― 황옥례 시인의 삶과 대표작 「괜찮아, 괜찮아」를 중심으로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황옥례 시인은 단지 한 사람의 시인이 아니다. 그는 우리 문단의 어머니 같은 존재이며, 수많은 문인들의 가슴에 조용히 자리를 내어준 따뜻한 시심의 원류다. 그의 작품에는 언제나 이 땅을 살아가는 이들의 슬픔과 기다림, 그리고 끝내 꺾이지 않는 사랑이 흐른다. 『괜찮아, 괜찮아』는 그 모든 것을 가장 담백하고 정직하게 담아낸 한 송이 생의 꽃이다.
문예창작과를 졸업한 후, 시인이자 수필가이자 화가로서 다양한 예술의 꽃을 피워온 황옥례 시인은 한국문인협회와 국제팬클럽한국본부, 에세이작가회, 송현수필문학회 등 굵직한 문단의 중심에서 꿋꿋이 자신의 예술적 자리를 지켜왔다.
제8대 한국 신문예문학회 회장을 역임하며 후학과 동료들에게 문학적 안목과 품격 있는 인품으로 존경받은 그는, 단순히 작품 활동을 넘어 문학공동체의 어른으로서 중심을 잡아주는 큰 나무였다.
수상 경력만 보더라도 그의 문학적 깊이와 사회적 신망은 자명하다. 자유시인상, 황진이문학상 본상, 월파문학상 본상, 하유상문학상, 한국신문문학회 대상 등, 그 어떤 상도 그가 걸어온 시의 진정성과 사람에 대한 애정을 온전히 담아내기 어려울 정도다.
그의 대표 시 「괜찮아, 괜찮아」는 이러한 시인의 인생철학이 고스란히 녹아 있는 작품이다. 외로움의 언저리에서 고요히 피어난 위로의 목소리, 그것은 삶의 가장 밑바닥을 통과해 온 사람만이 건넬 수 있는 다정한 숨결이다. 누구도 찾아오지 않는 주말의 정적, 현관 소리에 잠시 기대어보는 마음, 붉은 영산홍보다 깊은 상실의 그늘 속에서도 그는 말한다. 괜찮다고, 다시 피어난다고.
“홀로 남는다는 것은 / 지독히 슬프고 외롭지만 / 괜찮아, 괜찮아 / 내가 나를 위로한다.”
이 마지막 연은 황옥례 시인의 인생관을 응축한 문장이다. 스스로를 다독이며 살아내는 존재의 아름다움, 그것은 단지 시인의 품성만이 아니라, 한국의 어머니들이 지녀온 굳건한 인내의 미학이기도 하다.
그는 자신의 아픔을 조용히 숨기고, 타인의 슬픔을 먼저 끌어안는 이 땅의 어머니들처럼, 문학이라는 마당에서 모든 시인과 독자들을 품는다.
그가 남긴 시집 『한 송이 바람꽃』, 『시간의 거울』, 『목어의 눈』, 『괜찮아, 괜찮아』 등은 한 편 한 편이 수묵화처럼 은은하고, 구절마다 생의 온기가 묻어 있다. 수필집 『거울 속 세상으로』 또한 그의 삶의 태도를 비추는 성찰의 기록이며, 한국시대사전을 비롯한 다수의 동인활동은 그의 창작의 폭이 얼마나 넓고도 깊었는지를 입증한다.
황옥례 시인의 미의식은 ‘견딤 속의 고요함’, ‘말없는 다정함’으로 요약된다. 그는 삶의 고통을 허투루 다루지 않고, 슬픔조차도 한 송이 꽃처럼 피워낸다. 그에게 시란 현실을 외면하는 도피가 아니라, 상처와 화해하고, 혼자임을 긍정하는 법을 배우는 통로였다.
이제 그는 문단의 어른으로, 후배 작가들의 길을 밝혀주는 조용한 등불처럼 남아 있다. 그 따뜻한 시편들은 오늘도 고단한 누군가에게 “괜찮아, 괜찮아”라고 속삭이며, 여전히 피고 또 지고 다시 피어나는 달빛 같은 존재로 우리 곁에 머문다. 황옥례 시인은, 시로 숨을 쉬는 사람이며, 사랑으로 글을 쓰는, 진정 ‘한국의 어머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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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옥례 시인의 시 〈괜찮아, 괜찮아〉는 마치 생의 황혼 무렵, 누구에게도 기대지 않고 조용히 삶을 돌아보는 한 어머니의 마음을 투명하게 담아낸 작품이다.
단정한 언어와 절제된 감정이 외려 깊은 울림을 전하는 이 시는, 한국적 정서 속에 깃든 ‘견딤’과 ‘위로’의 미학을 정제된 시적 언어로 구현하고 있다. 시를 구체적으로 들여다보면, 그 안에 삶의 곤고함을 껴안고도 끝내 스스로를 일으켜 세우는 자애로운 시인의 내면이 선명히 비친다.
1연
“요즈음 무엇을 위해 살고 있는지 / 씁쓸한 여주 차를 마시며 / 내가 나에게 묻는다”
시인은 삶의 목적을 스스로에게 되묻는다. ‘무엇을 위해’라는 질문은 단순한 궁금증이 아니라, 생의 무게가 축적된 한 생애의 진실된 회고다. 여기에 등장하는 ‘여주 차’는 단순한 소품이 아니라, 고단한 삶의 쓴맛을 상징한다. 여주는 본디 약재로 쓰이지만, 그 맛은 유난히 쓰다. 시인은 그 쓴맛을 홀로 마시며, 삶의 이유를 찾고자 한다. ‘내가 나에게 묻는’ 구조는 고독의 짙은 농도를 드러내며, 이 시가 ‘타자의 위로’가 아닌 ‘자기 위무’의 서사임을 미리 암시한다.
2연
“주말이면 핸드폰 벨도 휴가 중 / 찾아온다고 약속한 사람 없지만 / 혹시 현관 소리에 귀 기울인다”
이 대목은 황옥례 시인의 절제된 감정 표현이 돋보이는 부분이다. 현대인의 일상 풍경을 닮았지만, 그 이면엔 깊은 고독이 깃들어 있다. 핸드폰은 연결의 상징이고, 주말은 관계의 시간이지만, 그마저도 ‘휴가 중’이다. ‘현관 소리’에 반응하는 섬세한 묘사는 시인의 외로움이 무기력함이 아닌, 여전히 ‘사람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살아 있음을 보여준다. 외로움 속에 남아 있는 정서적 온기, 그것이 이 시를 슬프게 하지 않고 다정하게 만든다.
3연
“붉게 물든 저녁노을 / 영산홍 꽃 빛깔도 참 고운데 / 함께 즐길 사람 떠났으니 / 그 사람 더욱 그리워진다”
이 연은 자연의 아름다움과 상실의 정서를 대비시키며, 깊은 그리움의 정서를 확장한다. ‘붉은 저녁노을’과 ‘영산홍’은 화려하지만, 오히려 그 찬란함이 ‘함께 나눌 이가 없음’이라는 부재를 더 선명하게 드러낸다. ‘떠난 사람’은 과거형이지만, 감정은 현재형이다. 자연은 여전히 아름다우나, 그 아름다움을 나눌 수 없는 지금이 더 외롭다. 황옥례 시인은 이처럼 격렬한 감정을 과잉된 표현 없이, 절제된 묘사로 깊이 있게 드러낸다.
4연
“홀로 의자에 앉아 / 하늘을 날고 있는 구름 떼를 보며 / 무한한 자유가 숙성된다”
자연을 관조하는 시적 자아의 시선이 여기서 도약한다. ‘구름’은 자유로운 존재이지만, 그 자유는 외로움의 다른 얼굴이기도 하다. ‘숙성된다’는 표현은 의미심장하다. 시인은 자유를 낭만적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오랜 시간 혼자 지내며 고통의 시간들을 겪은 끝에야 비로소 얻어지는 ‘익은 자유’ — 그것이 바로 이 구절이 품은 철학이다. 숙성된 자유는 견딘 이에게만 주어지는 내면의 평정이다.
5연
“홀로 남는다는 것은 / 지독히 슬프고 외롭지만 / 괜찮아, 괜찮아 / 내가 나를 위로한다”
이 마지막 연은 이 시의 주제와 시인의 철학이 가장 집약된 부분이다. 고독과 상실, 그 감정은 부인되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의 ‘지독함’을 정직하게 인정한다. 하지만 황옥례 시인은 거기서 주저앉지 않는다. “괜찮아, 괜찮아”는 누군가의 말이 아닌 ‘내가 나에게’ 건네는 속삭임이다. 이 다정한 반복은 외로운 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목소리다. 그것은 단지 자기 위안이 아니라, 자기 회복의 언어다.
이 구절에서 시인의 인생철학이 절절하게 드러난다. 고독은 견딜 수 있는 것이며, 외로움은 끌어안을 수 있는 감정이라는 믿음. 황옥례 시인은 그 믿음을 시로 써 내려가며, 우리에게 조용하지만 강한 위로를 건넨다.
이 시는 슬픔을 통과한 사람만이 말할 수 있는 다정한 힘을 지닌다. ‘괜찮아, 괜찮아’라는 말은 시인의 전 생애가 빚은 문장이다. 누구도 대신해 줄 수 없는 고통 앞에서, 스스로에게 건네는 이 한마디는 우리 모두의 삶에 오래도록 울릴 것이다.
황옥례 시인은 ‘말없는 다정함’으로 시를 쓰는 작가다. 이 시는 화려하지 않지만 깊고, 조용하지만 단단하며, 짧지만 생애 전체를 포괄한다. 『괜찮아, 괜찮아』는 시인의 삶이자, 그를 존경하는 많은 문인들이 말하는 ‘한국의 어머니’로서의 사랑이 스며 있는 문학적 등불이다. 그 시는 지금도, 삶에 지친 누군가의 귀에 조용히 속삭인다.
“괜찮아, 괜찮아.”
ㅡ 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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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옥례 시인님께 드립니다
김왕식
존귀하신 시인님,
그윽한 향기 머금은 시집 『괜찮아, 괜찮아』를 정중히 받았습니다.
책장을 넘기기 전부터, 그 속에 담긴 시인의 숨결과 따스한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져 왔습니다. 한 편 한 편을 찬찬히 읽으며 저는 문득 ‘어머니의 시’라는 말을 떠올렸습니다. 어느 문장에서든 그 다정한 손길이 느껴지고, 어느 구절에서든 삶을 다 견디고 난 분만이 할 수 있는 낮고 조용한 위로의 숨결이 있었습니다.
특히 표제시 「괜찮아, 괜찮아」를 읽으며, 지난 문학기행에서 시인님께서 조용히 앉아 구름을 바라보시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그날 무심코 지나치지 못했던 다리 통증으로 힘들어하시던 시인님의 표정이 지금도 아프게 남아 있습니다. 말을 아끼시면서도 누구보다 밝게 웃으시며 우리를 먼저 걱정해 주셨던 그 마음,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이들이 기억할 것입니다. 그 따스함이야말로 ‘한국의 어머니’라는 별칭에 가장 잘 어울리는 시인님의 본디 모습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신문예에서 함께 활동하던 날들 속에서도 시인님의 존재는 언제나 빛이었습니다. 누군가의 발표가 끝나고도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좋았어요” 한마디 건네시던 시인의 그윽한 눈빛과 말없는 격려는, 저 같은 후배에게는 늘 큰 힘이자 감동이었습니다. 시의 깊이는 말로만 전달되는 것이 아님을, 시인은 그 삶 전체로 보여주셨습니다.
황진이문학상 본상, 월파문학상 본상, 하유상문학상, 그리고 자유시인상과 한국신문문학회 대상에 이르기까지 시인님께 수여된 크고 작은 상들이 결코 우연이 아니라는 것을, 이 시집을 읽으며 새삼 실감했습니다. 그것은 단지 시의 기교를 넘어, 살아온 생애 전체가 시라는 그릇 안에 잘 익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슬픔도 기쁨도 다 지나온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단정한 언어, 그리고 고요한 사랑이 이 시집 곳곳에 피어 있습니다.
『한 송이 바람꽃』에서 『시간의 거울』, 『목어의 눈』에 이르기까지, 시인님의 작품들은 언제나 저에게 삶을 새롭게 들여다보게 해주는 거울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번 『괜찮아, 괜찮아』는 그 모든 삶의 경로 위에 놓인 따뜻한 담요 같았습니다.
시인님, 지금은 다리 건강은 좀 어떠신지요?
긴 계단 앞에서 잠시 멈춰 숨을 고르시던 그날이 자꾸만 마음에 남습니다. 여전히 많은 이들에게 힘이 되어주시는 분이기에, 더더욱 오래도록 건강하셨으면 좋겠습니다. 부디부디, 아프시지 마시고, 시인님의 아름다운 시편들이 더 많은 사람들의 가슴속에 가 닿을 수 있도록 늘 건강과 평안이 함께하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고운 시집을 통해 받은 감동, 그보다 더 크고 따뜻한 시인의 마음에 깊은 감사를 전합니다. 언제나 곁에 있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괜찮아, 괜찮아, 그렇게 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2025년 6월 14일 토요일
사랑과 경의의 마음을 담아
문우 청람 김왕식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