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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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도 속살
시인 황성구
저 멀리
남녘 은빛 바다 끝
아득한 물결의 목소리 너머
이어도가 조용히 숨을 쉽니다
지도에도 없는 외딴섬
꿈속에서나 떠오르는 이어도
그곳의 속살은
물비늘 같은 비밀입니다
천 년 전 해녀의 노래가
아직도 바닥을 쓰다듬고
바다를 지켜온 고래 눈망울 속엔
전설 하나 숨어 있습니다
당신이 오기 전까지
이어도는 아무 말이 없었습니다
이름표도 없고 오직 물비늘만
넘실넘실 일렁일 뿐이었죠
하지만 이제 그 바다 위에
종합해양과학기지가 굳건히 세워졌고
쿵쿵 심장 뛰는 소리가 들리며
물안개 속에서도 바다꽃의 피어납니다
그러나 이어도의 속살은
바람으로도 빛으로도 드러나지 않습니다
다만 해맑은 마음의 눈으로만
이따금 들여다볼 수 있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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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도, 물비늘 속의 시를 짓는 시인
― 황성구의 시 세계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황성구 시인의 시는 ‘눈에 보이지 않으나 존재하는 것들’을 더듬어가는 언어의 탐사이다. 『이어도 속살』은 그가 추구해 온 삶의 가치철학과 시적 미의식을 응축한 대표적 작품으로, 물질적 실재를 넘어선 정신의 풍경을 그리고 있다. 그의 시적 화자는 눈에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것에 귀 기울이고, 말보다 침묵에서 의미를 찾으며, 현실보다 전설에 더 깊이 젖어든다.
시가 펼치는 공간은 단순한 남녘 바다의 지리적 경계를 넘어, 시간과 신비의 경계 위에 선 ‘이어도’다. 이는 지도에도 없는 외딴섬이자, 꿈속에서나 드러나는 신비로운 장소로 그려지며, 곧 ‘존재하되 드러나지 않는 진실’의 메타포가 된다. 황 시인은 이 신화적 공간 속에 삶의 정수, 즉 이름 없이 존재하는 것의 순결함과 침묵의 고요한 힘을 심는다.
“물비늘 같은 비밀”이라는 구절은 그의 미의식이 얼마나 섬세하고 정중한 지를 잘 보여준다. 표면 위에서 반짝일 뿐 손에 쥘 수 없는, 그러나 분명히 존재하는 감정과 기억, 영혼의 층위를 그는 ‘물비늘’로 상징화한다. 이는 현대의 복잡한 감각들 속에서도 본질을 포착하려는 시인의 내면 감도이자, 바다라는 공간에 위탁한 시적 초월의 장치다.
또한 “해녀의 노래”, “고래 눈망울”, “바다꽃”과 같은 이미지들은 단순한 수사가 아니라, 우리 민족의 집단 무의식과 서정적 기억을 끌어내는 민속적 상징의 맥락 안에서 시인의 혼을 전이시키는 장치로 기능한다. 황성구의 시는 개인의 시를 넘어서 공동체의 신화를 되살리는 언어의 제의이며, 현대적 감각 위에 얹은 원형적 심성의 회복이다.
이어도는 이제 과학기지로 기능하지만, 시인은 그 이면의 ‘속살’을 묻는다. “바람으로도 빛으로도 드러나지 않는” 그 속살은 결국 해맑은 마음의 눈으로만 볼 수 있는 어떤 순수의 영역이다. 이는 시인이 평생 추구해 온 가치 ― 보이지 않는 것의 진실, 말 없는 것의 아름다움, 이름 없이 존재하는 것의 영원함과 직결된다.
황성구 시인은 말하듯 쓰고, 쓰듯이 숨 쉬는 사람이다. 그의 시는 바다처럼 넓고 깊으며, 물비늘처럼 섬세하고 투명하다. ‘이어도’라는 신화적 공간을 통해 그는 오늘의 우리에게 묻는다. 과연 우리는 무엇을 보고 있으며,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가. 그의 시는 대답이 아니라, 끝없는 되묻기 속에서 진실의 윤곽을 문득 드러내는 시적 사유의 지도다.
그리하여 『이어도 속살』은 단지 한 편의 시를 넘어서, 인간 존재의 본질에 다가서는 황성구 시인의 영혼이 쓴 서사시다. 이름표 없는 세계에서, 시는 곧 등대가 된다. 황성구는 그 등대를 바다 위에 심은 시인이다.
ㅡ 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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