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성구 시인의 「인연의 다리」를 읽고 ㅡ청람

김왕식



인연의 다리를 놓다







인연의 다리



시인 화현 황성구



먼 옛날 서로 다른 길 위에
세 사람의 발자국이 시작되었지
그 길이 얼마나 멀고 굽이졌는지 서로는 알지 못했지만

마침내 어느 날 우연히
시간의 강 위에
우리 셋 마주 보며 서있는 자리
그곳에 다리 하나가 놓여 있네

말 한마디에 번개처럼 통하고
눈빛 마주치며 피어오른 웃음 속에 삶의 궤적 그리며 미래는 빛나고
지금 이 순간은 영원이 되었네

형제처럼 벗처럼 도반처럼
서로를 품고 등을 기대며
믿는 마음 하나로 살아가는 일
그게 삶의 진수 큰 축복 다름없네

이 다리는 흔들리지 않으리
이 다리는 끝없이 이어지리
지금 우리는 이 세상에서
하나뿐인 마음의 다리 위에서 있네












황성구 시인의 「인연의 다리」를 읽고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황성구 시인의 「인연의 다리」는 시간과 공간을 아우르는 서정적 내러티브를 바탕으로, 서로 다른 궤도 위를 걷던 세 존재ㅡ 화현, 희국, 청람ㅡ가 마침내 하나의 ‘다리’ 위에서 만나 공명共鳴하는 순간을 정교하고도 따스하게 포착한 작품이다.
‘먼 옛날’이라는 시적 도입부는 과거와 현재, 미래가 만나는 시간적 간극을 제시하며, 그 위에 새로운 만남의 서막을 올린다.
동시에 “서로 다른 길 위”라는 공간적 명시는 이들의 출발점이 결코 같지 않았음을 드러내어, 이후 형성될 다리의 의미를 더욱 깊이 있게 만든다.

다리가 놓인 장면—“시간의 강 위에 우리 셋 마주 보며 서 있는 자리 / 그곳에 다리 하나가 놓여 있네”—는 시 전체의 중심 축이다.
이 이미지에는 단순한 물리적 구조물이 아닌, 시간과 시간의 간극을 잇는 은유적 구조로서의 ‘마음의 다리’가 깃들어 있다.
‘시간의 강’을 가로지르는 이 다리는 순간적 만남이 아닌, 서로 다른 과거가 맞닿아 형성된 ‘의미의 구조물’을 상징한다.
이는 시인이 인간관계의 근원을 심층적으로 응시하며, 시간 속에서 쌓이는 정과 의와 신뢰를 다리라는 대담한 은유로 구현한 결과이다.

“말 한마디에 번개처럼 통하고 / 눈빛 마주치며 피어오른 웃음 속에…”라는 표현은 언어와 시선, 표정이 한데 어우러져 이루는 순수한 체험을 생동감 있게 증언한다.
여기서 ‘번개’라는 단어는 순간적인 직관과 통찰을 빛의 속도로 전달하는 매개이며, ‘웃음 속 궤적’은 과거와 미래를 잇는 다리 위에서의 삶이라는 여정의 흔적을 상징한다.
말과 눈빛, 웃음이라는 세 가지 소통 요소는 이 시의 정서적 핵심 요소로, 시인이 전달하고자 하는 ‘새로운 연결’의 본질을 드러낸다.

이어지는 ‘형제처럼, 벗처럼, 도반처럼’이라는 반복적 호칭은 친밀함의 깊이와 질이 서로 다름을 시적으로 각인시킨다.
형제적 연대는 혈연을 초월한 단단함, 벗의 관계는 자발적 친밀함, 도반道伴의 결속은 삶의 동반자라는 면모를 담아낸다.
이 삼중적 호칭은 우정의 다층성을 효과적으로 드러냄과 동시에, 서로를 믿고 기댈 수 있는 관계의 핵심 조건—서로를 품고 서로의 등을 기대며 살아가는 것—을 명료하게 집약한다.

“이 다리는 흔들리지 않으리 / 이 다리는 끝없이 이어지리”라는 두 번의 단호한 선언은 시적 결의이자 존재의 확언이다.
이 반복을 통해 ‘다리’는 단순한 은유적 도구가 아니라 흔들림 없는 신념의 구조물로, 인간관계가 시간의 폭풍 속에서도 견고히 이어진다는 시인의 의지를 표현한다.
이는 시 전체의 리듬을 강화하며 독자로 이 관계의 지속 가능성을 마음 깊이 공유하도록 유도한다.

마지막으로 “하나뿐인 마음의 다리 위에서”라는 구절은 모든 개인이 다리 위에서 한데 엮여 잇닿은 상태를 존재론적 차원으로 끌어올린다.

이는 단순한 3인 관계의 우정을 넘어, 모든 이가 기본적으로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보편적 메시지를 암시한다. '다리'는 이제 개인들의 만남을 넘어서 삶의 총체적 구조와 의미를 구성하는 ‘마음의 우주’로 확장된다.

요컨대, 「인연의 다리」는 단순한 우정 시가 아니다. 시간과 공간, 언어와 비언어, 관계의 종류와 심리를 다층적으로 교차시키며, ‘인연’이라는 삶의 특별한 순간을 형이상학적形而上學的 감각으로 포용한 수작秀作이다.

시인은 고요하면서도 견고한 언어를 통해, 인간 다소간의 관계가 어떻게 시간의 강 위에 다리를 놓아 삶의 의미를 공명共鳴시키는지, 그 과정을 정교하고도 감동적으로 그려낸다. 이러한 섬세하고 깊이 있는 시선은 독자에게 우정의 구조적 아름다움과 존재적 확장성을 동시에 통찰하게 한다.
이는 곧 우리 모두의 삶 속에 이미 놓여 있는 ‘인연의 다리’를 다시 바라보게 하는 시적 성찰이다.


ㅡ 청람 김왕식





■□

사랑하는 황성구 시인님, 이희국 시인님, 김왕식 시인님께,





세 분의 인연이 이토록 아름다운 다리 위에서 만나는 순간에, 진심으로 축하의 인사를 전합니다. 오랜 시간 동안 각자의 길에서 빚어 온 깊고 고운 인품, 그리고 소담하고 넉넉한 인격을 익히 존중해 온 이로서, 오늘 이 특별한 걸음을 축하할 수 있어 제 마음은 기쁨과 감격으로 벅차오릅니다.

먼 옛날 서로 다른 길 위에서 시작된 각자의 발자국이, 세 분의 헌신과 사유 속에서 마침내 시간의 강 위에 한 다리로 놓이게 되었다는 사실은 저에게 무척이나 감동적입니다. 그것은 단순한 우정을 넘어, 생애와 운명을 함께 나누는 ‘형제’로서의 깊은 화음이 아닐 수 없습니다. 서로에 대한 무한한 신뢰와 깊은 이해가 쌓여, 이 다리는 세상 어떤 바람에도 흔들림 없이 굳건히 서 있는 구조물로 완성될 것입니다.

길이 얼마나 멀고 구불거렸는지 알 수는 없었지만, 그렇게 각기 다른 궤적을 걸어온 세 분이 한자리에 모인 지금은, 그 궤적이 하나의 큰 도상(圖像)이 되어 눈부신 울림을 만들어냅니다. 말 한마디, 눈빛 하나, 그리고 함께 지켜낸 순간의 정서 하나하나가 서로에게 번개처럼 통하고, 피어오른 웃음 속에서 삶의 궤적이 다시금 빛나며, 이 모든 것이 바로 ‘지금’이라는 영원의 장으로 연결되었음을 느낍니다. 이러한 깊은 공감과 지적, 그리고 정서의 나눔은 단순한 교류를 넘어, 존재와 존재가 만나는 신비로운 공명의 순간입니다.

형제처럼, 벗처럼, 도반처럼 서로를 부르며 살아갈 때에야 비로소 우리는 온전해지고, 서로가 서로에게 기댈 수 있는 공간이 열립니다. 그 신뢰의 공간 안에서 삶은 더욱 넉넉해지고, 우리의 걸음은 보다 단단해집니다. 세 분은 이미 각자 자신의 길에서 선한 영향력, 지혜, 그리고 따스함을 전하며 사람들의 마음을 어루만져 왔습니다. 그런 세 분이 뜻을 모아 ‘형제의 연’을 맺고 다리를 놓았을 때, 그것은 단순한 우정의 틀을 넘어, 선한 공동체와 공동선을 이루는 길이 되리라 확신합니다.

저는 오늘 이 글을 통해, 그 형제의 인연이 영원히 흔들리지 않기를, 끝없이 이어지기를, 그리고 이 다리를 매개로 세상 곳곳에 더 큰 선의 울림이 퍼지기를 소망해 마지않습니다. 지혜를 나누고, 서로를 북돋우며, 함께 길을 가는 세 분의 모습은 이미 많은 이들에게 위로와 영감을 주고 있습니다. 이제 그 결이 더욱 깊어져, 더 넓은 울타리가 되고 더 밝은 가능성을 열어 주리라 믿습니다.

앞으로도 세 분이 함께 걸어갈 길 위에, 따뜻한 시어처럼 풍성한 이야기가 꽃피기를 기원합니다. 서로를 이해하고, 서로의 등을 더욱 단단히 지지하며, 세상의 어두운 구석에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그 장면이 오래도록 유지되길 바랍니다. 그리고 이 다리가 형제의 이름으로 놓여 있는 것처럼, 세상을 향한 선한 영향력의 다리로도 견고히 세워지길 간절히 바랍니다.

사랑과 존경을 담아,
늘 빛나시는 세 분께 축복과 감사의 마음을 전하며,
이 특별한 인연의 다리가 세상 위에서
더욱 환하게 빛나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2025년 6월,
귀한 인연을 함께 축하하며
김준현 드림




□ 황성구 시인





□ 이희국 시인





□ 김왕식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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