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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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국 시인 시집 《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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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
시인 이희국
섬으로 가는 다리가 놓이고
사람들은 걸어서 바다를 건넜다
어린 시절 그런 대교 같은 선생님은
나의 다리였다
밤늦게 집으로 돌아오시던 부모님
나는 어둑할 때까지 교실에 남아 책을 읽었다
창밖에 눈이 내리던 날
어깨를 감싸는 따뜻한 손,
국어선생님은
내 손을 잡고 교무실로,
집으로 데려가 주셨다
외진 구석에 피어 있던 꽃, 어루만지며
목말까지 태워주신 사랑은
겨울에서 봄을 이어주는 다리였다
창밖에는 그날처럼 눈이 내리고
꼬리를 문 차들이 어둠을 밝히며 영종대교를 지나고 있다
바닷물 위에 길이 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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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국 시인의 「다리」를 읽고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이희국 시인의 「다리」는 단순한 교량을 넘어, 삶의 각 시기를 잇고 어둠 속에서도 빛을 전하는 인간애와 사제(師弟)의 의미를 함께 담아낸 작품이다.
시 속 ‘다리’는 물리적 이동수단이 아니고, ‘유년 → 청소년 → 장년’이라는 시간과 공간의 경계를 연결하는 존재다. 부모의 귀가와 국어선생님의 손길이 어린 화자에게 는 겨울에서 봄으로 이어지는 다리였다.
이희국 시인은 이 같은 사제愛를 통해 가족 안에서의 효와 사회적 연대의 의미를 동시에 환기하면서, 개인의 체험 속에서 보편적 가치를 끌어낸다.
외진 구석의 꽃을 어루만지고 목말까지 태워준 손길은 단순한 상징이 아니라 “사랑은 행위로 드러나는 미덕”이라는 시인의 철학을 보여준다.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표현된 애정과 관심은 인위적이지 않고 자연스럽게 우러나온다.
이희국 시인은 이를 통해 연민이 인간의 본연적 따뜻한 속성이라고 강조한다. 또한 “옛사람들이 효자는 하늘이 복을 내린다”는 속담을 빌려, 윤리적 감동과 삶의 연속성을 동시에 환기시킨다.
영종대교를 지나는 꼬리를 문 자동차 불빛과 바닷물 위에 환한 길은 단순한 묘사가 아니고, 어린 시절의 기억과 현재의 현실이 시각적으로 접속되는 장치이다.
“창밖에는 그날처럼 눈이 내리고”라는 회귀적 문장은 시간의 흐름을 거슬러 올라가지만, 마지막 한 줄의 “바닷물 위에 길이 환하다”라는 현재의 인식이 독자를 지금으로 데려온다.
이 대조는 과거와 현재, 개인과 보편, 감정과 인식 사이에 미세한 다리를 놓으며 시간의 흐름을 예리하게 포착한다.
이희국 시인의 시적 행위는 효와 연민이라는 전통적 덕목을 오늘의 서사로 되살리는 작업이다. 효라는 가치가 ‘구닥다리’라며 평가절하되는 시대에도, 그는 그것을 시간의 연속성과 가치의 재발견으로 재조명한다.
약사로서 쌓아온 경험—상실과 보살핌, 책임과 헌신—이 그의 시어에 자연스럽게 전이되어, ‘유명한 약사’라는 사회적 역할과 ‘사랑을 베푸는 시인’이라는 내적 정체성이 조화롭게 겹쳐진다.
요컨대, 이희국 시인의 「다리」는 삶의 여러 경계를 감성의 연결망으로 전환하는 문학적 다리다. 스승과 부모를 통해 깨달은 사랑과 연민의 덕목은 시간 축 속에 미묘하게 겹쳐 전개된다.
덕목을 보편적 가치로 환기시키는 이 작품은, 단순한 정감을 넘어 삶의 근본적 가치를 잔잔하지만 분명하게 환기하는 고품격 서사이다.
ㅡ 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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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국 시인
서울에서 태어나 2017년 <시문학>으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다리. "자작나무 풍경, 공저 "씨앗의 노래 외 다수가 있다. 국제 PEN한국본부 회원, 한국문인협회 재정협력 위원, 한국현대시인협회 이사, 한국비평가협회 이사, 월간 <문예 사조> 편집위원회 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약사, 가톨릭대학교 약학대학외래교수.
<한국비 평가협회작가상> 등을 수상했다
이희국 시인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