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왕식
□
박철언 시인과 청람문학회에서 나란히 ㅡ 소양고택
□
아래는 박철언 장관과의 특별한 인연을 문학적 은유와 따뜻한 감성으로 담아낸 서정적 에세이입니다.
권력과 문학이 교차하는 풍경을 그려냈습니다.
■
권력 뒤에도, 시와 평론이 피어난다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권력의 풍향을 바꾸던 시대의 거목의 전화 울림이다.
“청람 선생! 7월 6일, 부부 동반으로 예술의 전당 오페라하우스에 모시오. 모차르트 예약해 두었소.”
그 한 마디에 시간과 무게가 농축된다.
묵직한 음성은 마치 오래된 현악기의 진한 공명과 닮아, 그날 오후의 여운까지 미리 울려 퍼진다.
박철언 장관, 6공 시대를 살짝 스치듯 지나간 ‘정치의 황태자’.
노태우 정권 뒤편에서 나라의 운명을 헤아리던 제2인자의 겉치레는 어쩐지 단단했지만,
그의 내면엔 시인으로서의 고요한 눈길이 숨 쉬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 시를 품고 내가 품었던 글로 답했다.
덕분에 우리는 권력의 겉옷 뒤에서 문학의 어깨동무를 시작할 수 있었다.
문인(文人)들의 삶은 흔히 세상과 떨어진 줄기와 같다.
그러나 그 줄기가 말 건네듯 서로 교차할 때,
인생은 예기치 못한 장소에서 시를 쓰고, 평론을 새긴다.
청람문학회도 마찬가지다.
그곳에 장관님을 초대했다.
전주 소양고택으로 문학기행을 떠날 때도,
우리는 단순한 문학 애호가가 아니라, 소박한 문우이자 동반자가 되었다.
고택의 골목길을 함께 밟고, 밤하늘 아래 담소를 나눴다.
시의 선율은 권력의 그림자가 아닌,
한 줄의 감성이었다.
숙소의 방문을 열고 닫는 소리에도 그저 시선이 고요해졌다.
우리는 나이와 위치를 넘은 ‘문우(文友)’가 되었다.
이제 오페라다.
부부동반, 모차르트다.
‘살가운 사랑’이라는 표현이 우스울 수도 있지만,
그 표현 밖으로 저 문장의 온기를 어떻게 옮길 수 있을까.
감사라는 단어로는 부족하다.
비단결처럼, 인간도 권력도 넘나드는 고음의 찬란한 감탄을 담는다.
오페라하우스는 현대의 신전이다.
모차르트의 음표들은 박 장관의 음성과도 공명하고,
청람의 평론도 무대 스포트라이트를 함께 받는다.
관객석에서 바라볼 극장과, 글의 무대에서 바라볼 세상은 비슷하다.
노트 하나, 한 음절 하나를 놓치는 감각,
사람의 숨결이 멈추지 않고 흐를 때 비로소 시가 되고 이야기가 된다.
우리가 머무르는 고택은 과거의 숨소리를 품지만,
오페라하우스는 미래의 여운을 품는다.
문학이야말로 과거와 미래, 권력과 사랑, 시인과 평론가를
한 자리에서 호흡하게 하는 은밀한 매개이다.
사람들은 묻는다.
“권력자와 작가가 공존할 수 있느냐?”
우리는 답한다.
“시(詩)가 사람의 가장 깊은 속살을 건드리고,
평론이 그 울림을 세상에 담아낼 때,
그 장소엔 이미 권력도, 나라도 아닌 ‘시의 공동체’가 자리 잡고 있다.”
2025 년 7월 6일, 일요일 오후 4시, 부부 동반의 자리에 앉으며,
나는 묵직해진 음성 속에서 문학의 맥박을 다시 느낄 것이다.
권력의 무게가 아니라, 시의 온기로.
그날 주고받을 작은 눈인사에도 우리는 서로의 이름을 다시 불러줄 것이다.
“장관님, 시인님, 오늘도 함께 걸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걸어온 문학의 길이고,
권력 대신에 사랑과 공감으로 나누는 문우의 길이다.
작은 예술의 전당 한 줄 좌석 위에서, 우리는 오늘도
시와 평론의 파도를 함께 듣고 있을 테니까.
ㅡ 청람 김왕식
청람문학회 회원들
청민 박철언 시인의 문학강연
자운 김윤미 선생의 찻자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