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왕식
□ 안혜초 시인 경향신문 기자 시절
□서재에서 망중한을 즐기고 계신
안혜초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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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梨花의 혼, 한 송이 배꽃으로 피어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내 마음속에는 향기를 품고 피는 한 송이의 이화梨花가 있다.
그 이름, 안혜초.
그분을 떠올리면 언제나 봄이다.
바람결 따라 하얗게 흩날리는 배나무꽃그늘 아래,
지성의 옷자락을 조용히 여미며 걸어오는 모습.
그 발자국은 마치 오래된 시집의 마지막 장을 덮는 손끝처럼 고요하고 따뜻하다.
모습도, 말씨도, 마음도 이화의 꽃결로 피어난 사람.
이화가 사람의 심장에 깃들어 걸어 다닌다면,
그 영혼은 분명 안혜초일 것이다.
그분의 눈동자엔 꽃보다 깊은 시가 있다.
한 생을 꿰어낸 언어들이 무늬처럼 박힌 눈빛.
팔십을 훌쩍 넘긴 세월에도 그 미소는 아직도 연둣빛 소녀 같다.
시간조차 감히 흔들지 못한 품격,
세월의 바람은 그분의 귓가를 스쳤을 뿐,
주름 하나 허락받지 못한 투명한 평정으로 돌아왔다.
나는 그런 분과 함께 걷는 꿈을 꾼다.
배나무꽃이 바람에 흩어지는 봄날,
그 손을 조심스레 잡고, 꽃그늘 진 산책길을 나란히 걷는 일.
그 손에는 오래된 잉크 냄새와 갓 피운 시의 온기가 서려 있을 것이다.
말이 사라지는 순간에도 그 손 하나로 전해지는 언어,
그 체온 하나로 알게 되는 문학의 결.
그분은 어디서든 시가 되는 사람이다.
함께 앉은 벤치가 문학의 서재가 되고,
푸르른 잎 하나가 철학의 구절이 된다.
피자두 한 알에도, 배꽃 한 잎에도
그분은 생을 불어넣고, 기다림의 숨결을 불어넣는다.
말로 쓰지 않아도, 존재로 읊는 시.
그것이 안혜초 선생님의 문학이다.
나는 이제야 깨닫는다.
시란 결국 사랑하는 사람과 걷는 길 위에 피는 꽃이라는 것을.
선생님의 한숨마저 시가 되고,
그 걸음 하나마다 계절이 따라 피어난다는 것을.
이화의 지성이란 무엇인가.
사랑으로 가르치고, 품격으로 말하며,
고요함 속에서 가장 깊은 울림을 건네는 것.
나는 조용히 대답한다.
안혜초 선생님의 존재, 그 자체가 이화의 혼이라.
지금도 내 삶은 그분의 문학과 사상으로 물들어 있다.
그 향기는 사라지지 않고,
은은히 나를 이끄는 배꽃 아래의 한줄기 바람이 된다.
언젠가 봄이 오면
다시, 그 꽃길을 함께 걷기를.
피아노 건반처럼 부드러운 음률로
그분이 읊는 시를 들으며
내 생의 가장 고운 장면 한 컷을
그 길 위에 남기고 싶다.
그리고 나는 기도한다.
그 길이 오늘도 우리 곁에
한 줄 시처럼 펼쳐지기를.
ㅡ 청람 김왕식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