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왕식
■ 철 잃은 왜가리, 그리움의 늪에 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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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 잃은 왜가리, 그리움의 늪에 서다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임진강변, 이른 저녁의 빛이 늪을 감싼다.
물비늘 위로 잔바람이 지나가면, 그 흔들림 속에 한 마리 왜가리가 우두커니 서 있다.
철새라 불리지만, 그 계절을 잃어버린 듯하다.
고요히 한 점을 응시하고 있는 눈빛엔 바람도 머뭇거린다.
그 눈길 끝에는 무엇이 있을까.
떠나간 무리를 향한 그리움일까,
아니면 이미 돌아오지 못할 기억에 박힌 한 사람일까.
그 늪은 단지 물과 갈대가 얽힌 풍경이 아니다.
지워지지 않는 추억이 고여 있는 곳,
소리 없이 익어간 마음의 무늬들이 바닥에 가라앉은 기억의 연못이다.
왜가리는 그 위에 그림자처럼 앉아 있다.
마치 내 어릴 적 소꿉친구, 어느 날 문득 사라지고 말았던 그 얼굴을 기억하듯.
그 아이는 웃을 때마다 햇살을 데리고 다녔고,
장독대 뒤편에서 깔깔대던 소리마저 바람에 묻혀버렸다.
나는 미처 이별이란 말도 몰랐기에,
그날 이후로도 오래 기다렸다.
해마다 봄이 오면, 혹시 다시 나타날까 싶어
굴뚝 위의 연기조차 아이의 숨결처럼 바라보며.
이제는 내 마음이 늪이 되었나 보다.
철 따라 흐르지 못하고,
기억의 한 자리에 머물러버린 왜가리처럼
나는 아직도 그 아이를, 아니 그 시절의 나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강은 흐르고, 계절은 돌고,
왜가리는 머물고, 나는 쓴다.
이 풍경이 한 편의 시로 완성되기를 바라며.
잃어버린 것들이 되돌아오지는 않아도,
이 마음만큼은 그곳에 남아 숨 쉬고 있다고,
문득 철 잃은 왜가리가 내게 속삭이고 있었다.
ㅡ 청람 김왕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