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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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나를 묻는 순간, 내가 아닌 내가 대답한다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나는 문득 멈춰 서서 묻는다.
나는 누구인가?
그러나 이 질문은, 고요한 물 위에 돌을 던진 듯
겉은 잔잔한 듯하지만 그 아래로 오래된 울림을 퍼뜨린다.
나는 누구인가.
그 물음은 내가 나를 가장 잘 안다고 믿을 때 더욱 거세다.
마치 내 안에 내가 아닌 누군가가 살고 있는 것처럼,
나는 또 다른 나를 향해 질문을 던진다.
"네가 정말 나냐?"라고.
거울을 본다.
그 속에 익숙한 얼굴이 있다.
습관처럼 웃고, 피곤처럼 찡그리는 표정,
그 모든 것이 나인 듯하지만,
거울은 언제나 반대 방향으로만 나를 보여준다.
나는 왜 나를 직접 바라볼 수 없는가.
눈으로 본 나는 피상이고,
기억 속의 나는 조각이며,
타인이 말해주는 나는 그림자일 뿐이다.
나는 내가 아는 내가 아니다.
가끔은 너무 낯설고,
가끔은 너무 익숙해서 그저 지나쳐버린다.
나는 어쩌면 내가 되고 싶었던 나일 수 있고,
누군가가 나를 원했던 모습에 맞춰 조율된 존재일 수도 있다.
타인의 눈을 통해 만들어진 나,
기억을 통해 왜곡된 나,
상처 속에 감춰진 나.
나는 나를 찾는다.
그러나 찾으려 할수록 더 미궁이다.
마음속에는 늘 ‘되지 못한 나’가 걸터앉아 있다.
그는 나를 비웃거나,
또는 애처롭게 내려다보며 말한다.
“너는 아직 나를 모른다”라고.
나는 스스로를 위로한다.
그래도 나는 살아 있고,
매일 나를 살아낸다.
잠에서 깨어 걷고, 밥을 먹고, 누군가와 웃고 울고 다툰다.
그러나 그 순간들 속에서도
나는 내가 아닌 듯한 느낌이 불쑥불쑥 고개를 든다.
그것은 마치 영혼이 내 안에 머무르지 않고,
내 삶을 바깥에서 구경하듯 바라보는 감각이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단지 이름이거나, 직업이거나, 성격이거나, 과거의 총합인가.
나는 내가 선택한 말과 행동의 결과물인가.
아니면, 모든 것을 지우고 나서야 비로소 드러나는 본질인가.
꽃은 이름을 알지 못해도 핀다.
바람은 누가 불라하지 않아도 분다.
그처럼 나는 존재 그 자체로 충분하지 않은가.
그러나 인간은 존재 위에 의미를 덧입히려 한다.
나의 고유함을 설명하려 하고,
내가 남긴 흔적에 이름표를 붙인다.
하지만 어쩌면 가장 중요한 질문은,
나는 왜 내가 되고 싶은가,
그리고 나는 왜 지금의 나를 감당하지 못하는가,
그 두 사이에 놓여 있는 시간과 용서, 그리고 침묵이다.
나는 누구인가.
그 물음은 생의 끝까지 따라다니는 그림자다.
그 질문에 답하지 못하더라도,
질문을 품고 사는 순간,
나는 조금씩 ‘나’에 가까워지고 있을지 모른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나를 부른다.
아직 오지 않은 나를 향해,
이미 지나쳐 온 나를 향해,
그리고 지금 이 자리에 앉아 글을 쓰고 있는
어쩌면 너무나도 외로운 나 자신을 향해,
천천히, 낮고도 깊은 목소리로 묻는다.
나는 누구인가.
그러자
마음 어딘가에서 오래된 메아리 하나가,
이윽고 내게 속삭인다.
“너는 아직 끝나지 않은 문장이다.”
ㅡ 청람 김왕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