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희자 시인의 「어린 날의 붉은 꽃잎」을 읽고

김왕식




유홍초


변희자 시인










어린 날의 붉은 꽃잎




  시인 변희자  



            

어린 날
밤하늘 닮은
까맣고 보드라운
우단천 위
붉디붉은 유홍초 꽃잎
수놓아
나만의 원피스
날개처럼 입혀주시던
엄마의 찐 손길
“우리 딸 공주님일세.”

젊은 날은
풀밭과 꽃밭을 누비며
눈빛 맑은 아이들과
희망이라는 씨앗
뿌리고 가꾸며
기쁨의 단을 거두었지
“선생님, 천사 같아요.”
그 기억의 말 조각
가슴 깊이 향기로 남아
오늘도 피어나고

이제
초록이 출렁이는 숲 속에서
하얀 종이 위
까만 글자
생각의 텃밭을 일구노라면
옆마을 시인이 건너와
하는 말
“들국화 여인, 차 마셔요.”
“아니, 유홍초 시인님!”

어린 날의
그 붉은 꽃잎이
한 땀 한 땀
순정의 꽃물 들인다







한 땀 순정으로 수놓은 삶
― 변희자의 「어린 날의 붉은 꽃잎」을 읽고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변희자 시인은 시를 애써 쓰지 않는다.
그의 시는 물 흐르듯 자연스럽고, 말하듯 유려하다.
시는 곧 변 희자시인 자신이며, 그의 삶은 곧 시로 이어진다.
그는 그냥, 생각이 솟으면 쓴다.

그뿐이다.

이번 시 「어린 날의 붉은 꽃잎」 역시 그렇다.
이 작품은 단순한 회상이 아니라, 세월을 따라 천천히 피어난 한 여인의 생의 시편이다.
시인은 유홍초留紅草라는 감각적 상징을 통해 자신의 삶을 정직하게 직조하며, 그것을 정갈한 시어로 조용히 풀어낸다.
어린 소녀로 시작해 어머니가 되고, 교사가 되었다가 시인으로 이어지는 그 존재의 궤적을 꽃잎처럼 한 겹 한 겹 정성스레 겹쳐 놓은 서정의 서사다.

첫 연은 유년기의 따뜻한 기억으로 시작된다.
“밤하늘 닮은 / 까맣고 보드라운 / 우단천 위 / 붉디붉은 유홍초 꽃잎”이라는 묘사는 단순한 이미지가 아니다.
그것은 사랑과 보호의 기억이며, 존재를 빛내주던 한 손길의 체온이다.
유홍초는 여기서 단지 꽃이 아니라, 어머니의 순정 어린 손길이 옷감 위에 수놓은 ‘존재의 첫 기억’이자 자존감의 근원이다.
“우리 딸 공주님일세”라는 말은 외면의 치장을 넘어, 내면의 존귀함을 일깨우는 서정적 선언이다.
시인은 이 기억을 일생의 원형으로 간직하고 있다.

두 번째 연에서는 교사로서의 삶, 젊은 시절의 이상이 펼쳐진다.
“희망이라는 씨앗 / 뿌리고 가꾸며 / 기쁨의 단을 거두었지”라는 구절은 단순한 교육적 행위가 아닌, 영혼의 수확이다.
제자의 순수한 고백, “선생님, 천사 같아요.”는 시인이 삶 속에서 얻은 가장 맑은 보상이었을 것이다.
그 기억의 말 조각이 “가슴 깊이 향기로 남아 / 오늘도 피어나고” 있다는 표현은, 과거가 단지 지나간 시간이 아닌, 오늘의 시를 꽃피우는 씨앗임을 말해준다.

마지막 연은 현재의 시인으로서의 자각과 정체성을 선언한다.
“초록이 출렁이는 숲 속”과 “하얀 종이 위 / 까만 글자”는 자연과 언어가 조우하는 시인의 작업 공간이며,
그곳에서 그는 다시 삶을 경작하고 있다.
옆마을 시인의 “들국화 여인”과 “유홍초 시인”이라는 호명은,
시인을 자연과 하나 된 존재로, 그리고 자신의 삶을 꽃잎으로 물들인 창조자로 격상시킨다.

결국 이 시는, 한 여성의 생애를 꽃잎에 비유하여 한 땀 한 땀 수놓은 시적 자서전이다.
유년기의 어머니, 청춘기의 교직 사랑, 그리고 시인으로서의 사유가 각기 다른 색으로 겹쳐지되,
그 근원에는 순정, 희망, 생명에 대한 존중이라는 삶의 가치 철학이 굳건히 흐르고 있다.

변희자 시인은 이 시를 통해 삶과 문학이 둘이 아님을 말한다.
그녀의 시적 미의식은 단순한 미화가 아니다.
그것은 시간과 감정, 기억을 삶의 직물 위에 꽃물처럼 들이는 고요한 숭고함이다.
유홍초 한 송이로 시작된 생의 여정이, 결국 한 편의 시로 되돌아와 다시 피어난다는 이 순환의 서사는
독자에게도 잊고 있던 자신의 붉은 꽃잎 하나를 문득 떠올리게 만든다.

이 시는 사람의 온기와 시간의 빛깔을 그려내는 섬세한 바느질이며,
그 바늘 끝에서 피어난 한 송이 유홍초는, 진정 시인의 혼을 닮아 있다.



ㅡ 청람 김왕식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keyword
작가의 이전글내가 나를 묻는 순간, 내가 아닌 내가 대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