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왕식
김보일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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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는 권력이다. 이제 언어기 권력을 아예 상실하든가, 모두가 권력의 언어를 움켜쥐거니 아니면 또 다른 전문가 엘리트 집단의 언어가 ai와 공중의 언어를 제압하고 언어권력의 패자로 등극할 것인가, 그 게임에서 나와 내 친구들은 어떤 태도를 취할 것인가, 흥미진진한 게임이 펼쳐질 모양이다. 정의론에 입각해 채식주의자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글을 사설조로 써달라고 하니 지체하지 않고 한 편의 글을 구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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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식주의자를 위한 공정한 배려, 정의로운 사회의 조건
김보일 ㅡ 전 배문고 국어교사
최근 학교 급식, 군대 식단, 공공기관의 행사 등에서 채식주의자들이 지속적으로 소외되고 있다는 지적이 잇따른다. 한 대학의 기숙사 식당에서 채식 옵션이 전면 폐지되었고, 일부 군 장병들은 육류 중심의 식단 속에서 섭취할 수 있는 음식이 거의 없다고 호소하고 있다. 병원, 교도소, 재난 대피소 등에서도 채식 식단을 요구하는 목소리는 늘어나고 있지만, 국가 차원의 대응은 미미한 실정이다.
이는 단순히 식습관의 문제가 아니다. 개인의 신념, 윤리, 건강, 종교에 따른 채식 선택은 존중되어야 할 인권의 일환이며, 그 배려는 민주주의 사회가 지향해야 할 기본 원칙 중 하나다. 존 롤스의 정의론에 따르면, 정의로운 사회는 사회적 제도의 기본 구조가 모든 이의 이익을 고려해야 하며, 특히 가장 불리한 조건에 처한 이들을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이 원칙에 따르면 다수의 기호에만 맞춰진 식단은 소수의 자유와 권리를 침해할 가능성이 크다.
채식주의자는 극소수의 특이한 사람이 아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기후 위기와 건강 문제를 고려해 채식의 확대를 권고하고 있으며, 국내 채식 인구는 이미 250만 명에 달한다는 통계도 있다. 종교적 이유로 육식을 피하는 사람들, 환경 보호를 이유로 채식을 선택한 이들, 건강상의 문제로 고기 섭취를 지양하는 이들 모두는 존중받아야 한다. 그러나 여전히 이들은 '귀찮은 요구자'로 간주되며, 사회적 배려에서 밀려난다.
이 문제는 단지 식단 선택권의 문제가 아니다. 사회가 누구의 필요를 ‘기준’으로 삼느냐에 대한 본질적인 질문이다. 모두를 위한 급식이란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가? 공공기관의 식단에서 다수결은 정의가 아니다. 정의는 소수의 권리를 고려하는 일에서 시작된다. 특히 공공의 영역에서 ‘다수의 취향’을 ‘보편의 기준’으로 설정하는 것은 정의론의 차등의 원칙에 정면으로 배치된다.
해외의 사례는 참고할 만하다. 독일은 학교, 군대, 병원 등 모든 공공식단에 최소 두 가지 이상의 식단을 제공하며, 그중 하나는 반드시 채식이어야 한다는 가이드라인을 제정했다. 프랑스는 2021년부터 모든 학교에서 일주일에 최소 한 끼는 완전 채식 식단을 의무화했다. 캐나다는 식품지침(PFG)을 개정해 공공영역에서 식물성 식품의 비율을 대폭 늘릴 것을 권고하고 있으며, 일부 지역에서는 아예 기본 식단을 채식으로 전환하고 육류는 별도 요청을 통해 제공하도록 했다.
이러한 정책은 채식을 강요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선택권을 확장하고, 다양한 시민의 윤리와 신념을 공적으로 배려하기 위한 것이다. 우리는 '고기를 먹지 않는 선택'이 비정상적이라고 전제하지 않고, 그 선택이 존중받을 수 있도록 사회 구조를 재편해야 한다. 정의로운 사회는 다수가 약자를 너그러이 포용하는 사회가 아니다. 약자가 자기 권리를 말할 수 있고, 그 권리가 실제로 제도화되는 사회다.
이제 우리도 질문해야 한다. 우리는 왜 채식주의자를 계속해서 불편한 예외로 취급하는가? 왜 육식을 중심으로 한 관행이 '보편'이 되었는가? 그리고 공공의 기준은 왜 여전히 소수의 필요를 외면하는가? 정의로운 사회는 이런 질문들에 응답하는 방식으로 구성되어야 한다. 단순히 채식주의자를 위한 한 끼 식단을 넘어, 우리는 모든 시민의 가치관과 윤리가 공적 장치에서 동등하게 존중받을 수 있는 시스템을 고민해야 한다.
채식은 선택이다. 그러나 그 선택이 자유롭기 위해서는 사회가 그 자유를 실현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이는 복지의 사소한 확장이 아니라, 정의와 존엄의 문제다. 채식주의자의 자리를 마련하는 일은, 소수의 권리를 확인하는 일이며, 나아가 더 많은 사람들의 삶을 포용할 수 있는 사회를 위한 실천이다. 이제는 그 자리를 마련할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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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수의 식탁, 정의의 무늬를 짓다
― 김보일의 ‘채식주의자를 위한 공정한 배려’를 읽고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김보일 선생은 고등학교 국어교사라는 일상의 울타리 속에서도, 그 누구보다 넓은 시야와 깊은 문제의식을 품은 지성인이다. 그는 언어를 교실의 도구로만 다루지 않는다. 오히려 언어는 세계와 권력을 통찰하는 렌즈이며, 윤리를 실현하는 도구다. 이번에 발표한 「채식주의자를 위한 공정한 배려, 정의로운 사회의 조건」은 언뜻 보기에 ‘채식에 대한 배려’라는 구체적이고 실천적인 주제를 다루지만, 그 밑바닥에는 정의란 무엇이며, 우리는 어떻게 공공의 기준을 세울 것인가라는 근본적 질문이 고요히 흐르고 있다.
김보일은 서두에서 단호히 말한다. “언어는 권력이다.” 이 선언은 단지 수사적 장치가 아니다. 그는 언어가 사회 구조를 정당화하거나 뒤엎을 수 있는 힘임을 간파하고, 그 언어를 통해 소수의 권리가 배제되고 있는 현실을 조목조목 짚는다. 학교, 군대, 병원, 교도소, 재난대피소… 이 모두가 우리 사회가 “공공성”이라 부르는 공간이다. 그러나 그 공공성은 ‘보편’을 가장한 다수의 취향이 지배하는 자리이며, 채식주의자는 그곳에서 늘 불편한 예외가 된다.
김보일은 존 롤스의 정의론을 기반으로 논리를 전개한다. 그는 차등의 원칙을 끌어들여, 가장 불리한 조건에 놓인 소수의 선택권이 존중받아야 한다는 정당한 요구를 제기한다. 이는 단지 ‘배려의 차원’이 아니라, 헌법이 지향해야 할 권리의 본질이기도 하다. 그의 글은 도덕적 호소에 머무르지 않고, 명확한 철학적 기반 위에서 ‘제도 설계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이 점에서 김보일의 글은 감성과 이성이 정밀하게 교직된, 교육자이자 사유자로서의 탁월한 성과라 할 수 있다.
그는 채식주의자를 “귀찮은 요구자”로 간주하는 사회의 무관심을 비판하며, 다수가 지배하는 방식의 공공 시스템에 내재한 폭력을 성찰하게 한다. 그의 시선은 냉철하다. 그러나 그 냉철함은 인간과 공동체에 대한 따뜻한 존중에서 출발한다. 글의 중반부에서 소개되는 독일, 프랑스, 캐나다의 정책 사례들은 이 글이 단순한 비판을 넘어 대안을 향한 모색의 기록임을 입증한다. 그는 공공의 영역에서 ‘선택권’을 보장하는 것이 단지 식습관의 문제가 아닌, 존엄과 정의의 실현임을 강조한다.
무엇보다 주목할 점은, 김보일의 언어가 지닌 품격이다. 그의 문장은 논리적이되 날카롭지 않고, 정제되어 있으되 감정이 말라 있지 않다. 이는 단순한 논설문을 넘어, 윤리적 미문이라 부를 수 있을 만큼의 깊이와 밀도를 품고 있다. 그는 채식주의자라는 소수를 통해, 더 근본적인 질문을 우리 앞에 던진다. “공공의 기준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그리고 그 질문을 통해, 진정한 민주주의는 다수가 소수를 너그럽게 포용하는 것이 아니라, 소수가 자기 권리를 당당히 주장할 수 있고, 그 권리가 실질적으로 제도화되는 사회임을 역설한다.
김보일의 이 글은, 단순히 채식이라는 사안을 넘어, 권력과 언어, 공공성과 정의의 교차로에서 우리가 어떤 사회를 지향할 것인가를 묻는 윤리적 성찰이자 실천적 제안이다. 그는 고등학교 교사라는 일상의 자리에서, 그 어떤 사회 비평가보다도 날카롭고 정직한 언어로 우리 사회의 윤리적 결핍을 들추고, 동시에 가능성의 문을 연다. 이 글은 시끄럽지 않지만 강하다. 사변적이지 않지만 깊다.
‘채식주의자의 한 끼’는 작아 보인다. 그러나 그 작은 식탁에 담긴 질문은 크다.
김보일은 그 식탁 위에 정의의 무늬를 수놓는다.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언어로 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일 중 하나일 것이다.
ㅡ 청람 김왕식